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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위계성

'문법은 당신의 머릿속에 산다'

by 정진

우리는 일직선으로 언어를 사용한다. 누구든 첫 단어 뒤에 그 다음 단어가, 또다시 그 다음 단어가 이어지는 식으로 말하는데서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특성, 즉 하나의 선(line)과 같이 순서를 따르는 배열을 들어 '선형성(linearity)'이라 부른다.


언어의 선형성은 꽤 친숙하고 직관적인 개념이다. 영어와 한국어를 두고 비교하는 상황을 예시로 들어 보자. 우리는 어족(language family), 변천, 음운 구조, 어원적 역사, 사용 관습 등을 기준으로 양 언어를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표면상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역시 어순이다. 한국어의 정문은 '주어-목적어-동사'의 SOV어순을, 영어는 '주어-동사-목적어'의 SVO어순을 가진다. 이를 기준으로 다른 언어도 분류할 수 있다. 가령 중국어는 영어와 같은 SVO 언어이고 일본어는 한국어와 같은 SOV 언어이다.


그렇다면 선형성이 언어의 본질적인 속성일까? 언어라는 무궁무진한 체계는 순서 맞추기를 기반으로 작동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언어는 위아래가 있는 '위계적 구조(hierarchical structure)'를 바탕으로 짜여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아래의 유명한 예문을 살펴보자.


(1) "I saw a man with a telescope"

해석 1: 나는 망원경을 들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해석 2: 나는 망원경으로 한 남자를 보았다.


예문 (1)은 겉으로 보기에 선형적으로 짜인 문장이다. 문장이 "I"다음에 "saw", "saw" 다음에 "a man"이 오는 식으로 쓰여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분명 그렇게 심오한 문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문 (1)은 적어도 두가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간단한 문장이 명백히 중의적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예문 (1)의 중의성은 선형이 아닌 위계적 구조를 상정하여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앞서 문장은 위아래가 있는 위계적 구조를 가진다고 했는데 이를 도식화하여 아래와 같이 가지와 노드로 표현한 것을 수형도(tree-diagram, 나무그림)라 부른다. 수형도를 사용하면 언어의 위계구조를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with a telescope"의 구조적 위치에 특히 주의하여 수형도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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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기술적인 부분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중요한 점은 전치사구에 해당하는 "with a telescope"가 왼쪽처럼 "a man"과 같이 묶여 같은 층에서 작동하느냐, 아니면 오른쪽의 경우처럼 남자를 본다는 내용의 동사구 전체와 같은 층, 즉 "a man"과 비교하면 하나 높은 층에서 별도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언어를 처리하고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 일직선상의 선형 구조가 아닌 위계적 구조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 물론 음운 변동이나 정보구조 등 선형성의 영향을 받는 언어 요소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장이 위계적 구조를 따라 조합된다는 점이 변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직관을 거스르지만 동시에 직관적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위계 구조가 언어를 이해할 때 훨씬 근본적이라는 주장은 직관과 어긋나는 것 같다. 하지만 위계적 구조가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중의성, "himself, herself" 등 영어의 재귀사(reflexives) 사용에 걸리는 제약 등을 모국어 화자라면 특별한 노력 없이 잘 처리한다. 즉, 이들은 무의식적인 언어 직관으로 위계구조를 능숙하게 다룬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우리가 우리의 인지능력을 사용하는 것과 인지능력을 탐구하고 조사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구조를 가진 체계, 즉 언어를 매일같이 사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우리가 그 무의식적 체계를 원리를 이해한다 할 수는 없다. 사실 인지능력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대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쓴다고 누구나 그 설계 원리나 디자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처럼 말이다. 다만 인지과학의 재미있는 난점은 바로 탐구의 대상과 수단이 똑같이 우리의 인지능력이라는 사실이다. 가령 언어학은 '언어로 언어를 연구하고 기술하는' 순환성의 문제와 매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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