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은 당신의 머릿속에 산다'
문장은 일종의 기계와 같다. 기계처럼 일정한 매커니즘에 기반을 두고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문장에 규칙성과 조직 원리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만약에 사람들이 어떤 원리 없이 그저 외운 표현에만 의존한다면 언어 생활은 이렇게 다양하면서 동시에 서로 소통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규칙성은 문장을 기계에 비유할 수 있게 해주는데 기계라는 말에서 흔히 떠올리듯 언어가 몰개성하고 따분한 공식이란 의미는 아니다. 사실은 정 반대에 가깝다. 문장은 기계처럼 주어진 매커니즘 위에서 움직이지만 재미있게도 그 매커니즘에 의해 완전히 결정되지 않는다.
규칙성의 대표적인 예시로 영어의 주어-조동사 도치(Subject-Aux Inversion) 현상을 들 수 있다. 영어에서는 'can, may, must, have'와 같은 조동사를 문장의 주어 앞으로 가져오는 도치(Inversion)를 통해 의문문을 만든다.
a. Kim will eat an orange.
b. Will Kim eat an orange?
c. Kim eats orange.
d. Does Kim eat orange?
위 예문 a와 b, c와 d가 각각 쌍을 이루고 있음에 주목해보자. 먼저 'Kim이 오렌지를 먹을 것이다'라는 의미의 문장 a는 조동사 'will'을 가지고 있는데 이 단어를 주어 'Kim' 앞으로 가져오면 'Kim이 오렌지를 먹을 것인가?'라는 의미의 의문문 b가 된다. 즉, 주어-조동사 도치 규칙을 통해 문장의 성격이 바뀌었다.
이 규칙은 조동사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c와 같이 표면적 조동사가 없는 경우에도 일관적으로 적용된다. 'Kim은 오렌지를 먹는다'라는 의미의 예문 c는 표면적으로 'will'과 같은 조동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c를 어떻게 의문문으로 바꿀까?
이 경우에도 예외 없이 조동사와 주어 사이에 도치가 일어난다. 놀랍게도 표면상 조동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영어에서 주어-조동사 도치가 의문문을 만든다'라는 규칙이 앞서서 적용된다. 결국 이 규칙을 만족하기 위해서 조동사 역할을 수행할 'do'가 도입되고 의문문d가 형성된다. 이는 b에 있는 조동사 'will'의 위치와 d의 'does'의 위치가 동일하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참고로 Kim은 3인칭 단수이며 문장의 시제가 현재이기 때문에 do는 does로 나타났다.) 이때 'do'가 도입되는 현상을 'do-support' 혹은 'do-insertion'이라고 부른다. 'do-support'와 같이 다소 임시방편처럼 보이는 현상까지 나타난다는 것은 문장이 무엇보다 규칙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강력한 예시이다.
이런 식으로 문장의 조직, 구성 원리를 다루는 분야를 '통사론(syntax)'이라고 한다. 위 영어 예시와 같이 문장 구성소가 움직이는 것을 '이동(move)'이라 부르는데 이는 통사론의 대표적인 개념 중 하나이다. 통사론에서 알고 있는 문장 구성 원리가 지금으로서 완벽하진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통사론은 중요한 분야이다. 왜냐하면 문장이 운용되는 이 규칙, 통사론적인 원리는 앞서 말했듯 규칙 지배적인 면을 보이면서도 무한한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독특한 언어의 특성을 핵심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통사론은 말소리를 다루는 음운론 및 음성학, 화용론이나 사회언어학 등에서 다루는 대화의 맥락과도 긴밀하게 상호작용한다. 예를 들어 문장 형식을 바꾸지 않아도 문장의 끝 음을 올려 말하면 질문으로 해석되는 운율 현상이나 정확히 같은 문장이 비꼼과 칭찬, 공격과 사랑고백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화용적, 사회언어적 현상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통사론적 지식은 문장의 구조적 측면을 대변하는 기본적인 이해의 틀이다.
혹시 통사론의 기본적인 개념을 더 알아보고 싶다면 구성소(constituent), 수형도(tree-diagram), 병합(merge)이라는 키워드로 출발하는 것을 권한다. 간략하게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구성소란 문장에서 하나로 행동하는 단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딸기우유가 먹고싶어' 라는 문장에서 '딸기우유'는 하나의 구성소지만 '우유가 먹'은 하나의 구성소가 아니다. 구성소는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문장성분과 비슷한 단위인데 통사의 기본적 단위를 이룬다. 수형도란 문장의 구조를 나무처럼 표현한 일종의 도식이다. 한국어에서는 '나무그림'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병합'이란 두개의 성분을 합쳐서 더 큰 구성소를 만드는 원리인데 인간 언어 체계의 핵심적 원리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