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시작한 두 달 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텃밭에 갔다. 1일 1 텃밭을 한 셈이다. 쑥갓과 루콜라 싹이 새로 나와서 궁금해 견딜 수가 없다. 어제보다 얼마나 더 자랐을지, 쏟아진 장맛비로 새싹은 안전한지... 온통 궁금하다.
그동안 밭에 가는 일이 일상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텃밭에 가면, 뻗어 난 줄기를 묶거나 풀을 뽑아주고 열매와 샐러드 재료를 뜯어서 집으로 온다. 금방 들렀다 가려 마음 먹지만, 보통 한 시간 또는 두 시간을 밭에 흘리고 돌아간다. 그래서 어떤 날은 글 쓰러 출근하는 길에 텃밭에 들렀다가 오전을 다 보낸 적이 한두 번 아니다. 요즘 일상의 순서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외출하려면 차를 가지고 삼거리에서 텃밭 입구와 보문 호수 방향을 결정한다. 삼거리에서 핸들을 잡고서 고민하기 쉬운데, 오늘은 마음먹고 그냥 지나쳤다. 습관이란 참 무섭다. 70일간 쌓은 규칙적인 행동이라 하루라도 빠뜨리면 뭔가 찜찜하고 불편한 마음이 일어난다. 우선, 하루 건너 밭에 들러야겠다.
김유신 장군의 천관녀 일화가 기억난다. 매일 기생집에서 술을 마셨던 김유신이 졸고 있는 사이, 그를 태웠던 말의 습관을 따라 천관녀 집에 도착한 이야기 말이다. 장군은 반기러 나온 그녀 앞에서 칼을 빼어 말의 목을 베고 이후로는 발길을 다시 하지 않았다는...
글을 쓰러 출근하는 중에 운전대는 자연스럽게 텃밭으로 향한다. 마음이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다. 해가 떨어지는 저녁에 잠시 들러 살피겠다고 마음먹고도 차를 타고 나가는 삼거리에서 여전히 텃밭으로 향해 밭을 걸어보고 일터로 향한다. 나도 모르게 초록 초록한 풀과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을 보며 마음에 안정을 얻고 있었다. 특별히 들러서 손을 봐야 할 일도 아닌데 말이다. 농부가 밭에 들러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시간을 낭비하는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는 과감히 조절해야 한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애써 만들어 놓은 좋은 습관을 무너뜨리는 것은 순간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단체 미션으로 두 달을 공들여 놓고도 불편함이 생기자 금세 그만두게 되었다. 매일 새벽 다섯 시 알람은 꺼 둔 지 오래다.
매일 일기를 쓰고 감사를 찾는 습관도 하루를 빠뜨리게 되면 금방 무너진다. 그래서 매일 계획표를 짜고 루틴을 진행하고 있다. 공들여 습관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이제 덜 중요해진 텃밭 가꾸기는 저녁 시간으로 두고 일주일에 두세 번 들러 볼 계획이다. 그래도 매번 들를 때마다 열매를 가지고 오면서 멋진 영감들이 내게 와주면 좋겠다.
텃밭에서 만난 얼룩무늬 애벌레와 커다란 두꺼비, 꿀벌과 작은 고라니까지도 신비함과 즐거움을 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멋진 글감들이 다가오길 바란다.
매일 밭으로 향한 초보 농사꾼에게 땅은 풍성한 선물들을 안겨주었다. 끊임없이 떼어낼 수 있는 상추와 쌈 야채들, 방울방울 맺혀 매일 순차적으로 익어가는 방울토마토 그리고 땅 위로는 흙더미를 덮으며 손을 내민 고구마 줄기들... 내가 한 것이라고는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 준 것뿐인데, 땅은 매일 발소리를 내는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었다. 심지도 않은 메리골드를 피워내서, 4번 팻말 내 밭은 주황색 꽃밭으로 입구를 채운다. 고마운 땅이 잡초로 뒤덮거나 황폐해지지 않도록 가끔 들러서 살펴보려 한다. 텃밭에 들러보는 일이 후회되거나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2일 1 밭, 3일 1 밭으로도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고 밭이 풍성하도록 손보련다. 밭이 준 선물들은 이웃과 나누면서.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공기 좋고 조용한 시골로 가고 싶어 한다. 소소하게 일굴 수 있는 텃밭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한다. 오십에 계획한 것도 아닌데 여섯 고랑 텃밭을 일구는 귀농의 삶을 산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텃밭의 삶은 이제 감사와 자랑이 되었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햇빛을 받아 오히려 건강하다. 비료나 농약을 하지 않은 안전한 채소로 식단을 누린다. 샐러드, 바질 페스토, 호박과 가지나물, 고추와 야채 쌈, 토마토와 옥수수 등으로 맛있는 식사가 가능하다. 시장에 가지 않아도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재료들을 텃밭에서 거둬들인다. 조금 더 기다리면 고구마와 땅콩을 캘 수 있다. 매일 밭으로 나가 농부의 모습으로 밭을 돌본 덕이다. 이제는 좀 더 익숙해져 기후와 기온을 미리 신경 쓴다. 그래서 매일 밭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충분히 텃밭을 돌볼 수 있다. 그래도 장마와 최고기온으로 무더운 날에는 밭으로 달려가 살피려 한다. 아이들을 돌보듯 식물에게도 사랑과 정성이 필요하다. 꼭 열매가 아니어도 기쁨과 건강을 주는 나의 텃밭.
1일 1 밭처럼 1일 1 책, 1일 1 샐러드, 1일 1 글 등 수많은 좋은 것들로 열정과 호기심이 지속되길 소망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지속한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변해가는 나 자신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