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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에 장화 신은 농부 5

오이 (나눌 줄 아는 사람)

by Jina가다

"내일 오이 싸줄 수 있어? 텃밭에서 기른 오이라서 더 맛있대."

"그래? 당연히 가능하지. 복숭아도 넣어줄까?"


텃밭에서 막 따 온 오이를 보던 남편은 내일 등산용 간식을 부탁했다. 바구니에 있던 오이를 꺼내어 냉장고 안에 넣었다. 똑같은 오이일 텐데 텃밭에서 기른 것이라 더 맛있다는 말에 웃음이 났다. 가끔 모종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준 그에게 텃밭 오이를 자랑하고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지분으로 주겠다.




아침 일곱 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려 남편이 바쁘다. 여름 등산복 두 벌 중 지난번과 다른 것으로 챙겨 입고 간단한 아침을 먹는다. 회사 동료들과 한 달에 한 번씩 가는 등산이라 아내인 내가 더 신경 쓰게 된다.


새벽 다섯 시 반, 스팀다리미로 남편의 등산복과 모자를 다림질했다. 어디서든 어깨를 쫙 펴고 멋져 보였으면 좋겠다. 오이를 나눠 먹으며 사람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다니 뭘 못 해주겠나.


냉장고에 있던 오이와 복숭아를 꺼냈다. 기다란 오이는 날렵한 칼처럼 잘도 자랐다. 진한 초록색으로 단단하고 차갑다. 납작한 감자 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껍질을 쓱 벗겨냈다. 껍질은 날렵하고 얇게 베어져 나와 아래로 떨어졌다. 듬성듬성 초록 껍질을 조금씩 남겨두고 깨끗하게 손질된 오이를 삼 등분했다. 작은 원통으로 잘라진 오이를 다시 네 조각이 되도록 해서 지퍼백에 담았다.


어제 산 딱따기 복숭아도 감자 깎듯 칼로 벗겨 내어 한입 크기로 먹기 좋게 등분해 다른 봉투에 담았다. 아이들 소풍에 도시락을 준비하는 기분이다. 동료들과 나눠 먹는 일이라 즐겁다. 남편뿐 아니라 아이들도 사람들 속에 잘 지내고 있음이 감사하다. 타인의 마음을 얻는 일에는 먹는 것을 나눠 먹는 것만큼 큰 것이 있을까. 무엇이든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사회 속에 잘 어우러지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이자 복이다.




세 아이들의 어릴 적부터 제일 신경 써서 가르친 부분은 친구들에게 내 것을 나눠줄 수 있는 성품이었다. 쌍둥이였기에 아기 때부터 엄마 품도 어쩔 수 없이 나눠야 했다. 맛있는 음식도 세 아이가 나눠먹어야 했기에 어쩌면 음식을 먹을 때에 가장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치킨 다리 두 개를 가지고 양보를 배워야 했고,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똑같은 양을 가지고도 많고 적음을 실랑이할 때도 있었다.


어쩌면 누나인 큰딸은 18개월이 되어 한창 귀염 받을 때, 가족들의 관심을 빼앗겼으니 제일 힘들었을 테다. 누구든지 관심과 애정을 빼앗기는 것을 제일 힘들어한다. 부모의 보호와 배려 그리고 사랑도 나눠야 하니 때로는 동생들이 미웠을 게다. 두 손에 쥔 내 것 나누는 일은 형제를 통해 가정에서 가장 먼저 연습한다. 가끔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무언가 부족함을 통해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


딸아이는 대학 때 국제법을 공부했다. 아이는 중동 여성과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졸업 후, 국제협력 기관에 인턴으로 입사해 아프리카로 1년간 파견 나갔다.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에서, 공교육 기관이 있어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기특하다. 히잡으로 얼굴을 가리고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여성들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따뜻하다. 아이는 자신의 재능과 젊음으로 약자를 도울 수 있는 멋진 청년으로 자라났다. 청년의 시기에 가장 용감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봉사인 듯하다. 대학생인 둘째와 셋째 아이도 기회만 된다면 봉사를 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셋째 아이는 한 학기를 휴학하고 아프리카에서 축구교실을 잠시 돕다가 돌아왔다. 맨발로 축구공을 차는 아이들을 안타까워하는 아들의 마음이 멋지다.

자녀들이 취업하고 결혼해서도 나누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마음만 있다면 내가 가진 작은 것으로도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다. 작은 친절과 작은 나눔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등산을 간 남편이 맛있게 오이를 나눠 먹고 빈 봉지를 들고 돌아오겠다. 유쾌한 웃음과 수다로 한층 즐거워져서 올 것 같다. 똑같은 오이인데도, 텃밭에서 본인이 직접 기른 오이라 맛있고 나눠먹으니 더더욱 즐거울 듯하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뿌릴 때는 자기에게도 몇 방울 정도는 묻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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