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가다 Aug 23. 2023

좋은 말이 좋은 관계를 만든다

청남대 여행 중 유쾌한 식사

오전 열 시, 수원에서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를 달린다. 네 시간 넘게 집을 향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천안을 지나치자, 남편은 대통령의 별장으로 유명한 청주 청남대를 들렀다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생각해 냈다면서, 앞만 보며 말을 이어간다. 지끈지끈 두통이 일었지만 우선 고맙다고 말했다. 이른 아침 식사 준비와 수면 부족으로, 몸은 젖은 솜처럼 무겁다. 입 밖으로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한숨이 나왔다.


내 딴에는 이사한 자녀들과 시댁 행사로 피곤한 그를 배려해, 바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대충 편한 옷으로 입고 나온 터다. 작은 충돌도 귀찮은 중년이고, 서로를 너무 잘 알아 배려도 많은 중년이다. 오늘 하루는 좁은 자동차 안에서 내 의지와 결정권을 내려놓자고 잠시 마음먹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이끌도록 피곤한 기색을 접고 잠시 눈을 감았다.


두 노인이 보석점에서 설명을 듣는데, 할머니의 안전과 필요를 타이밍 적절하게 채우던 멋진 할아버지 광고 영상이 생각났다. 시간이 더 흐르면 서로의 박자를 절히 잘 맞춰갈 수 있으리라, 함께 연습하면 가능해지리라. 내가 더 연습해야 하더라도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아니, 익어가고 싶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청남대 근처까지 이르렀다. 포도밭이 연달아 보인다. 벌써 포도가 익어 수확하는 여름이다. 뜨거운 여름날 대통령 가족이 쉬던 별장에 방문하다니...

'너무 맛있는 포도'라고 쓰인 현수막이 보인다.

"'너무', '정말'은 빼야지. 맛있게 광고 문구 만들어봐 여보"

"송~송~ 달콤한 포도송이 팔아요."

운전대를 돌리며 무심하게 내뱉는 남편. 풋~!

청남대 주변을 미리 공부하지 못해, 점심을 먹으려던 식당을 이미 지나쳤다. 청남대 입구에 맛집 식당이 즐비할 것으로 예상했다. 내비게이션을 수정하고 운전대를 돌려 식당이 있는 마을로 유턴한다. 이미 12시 반이 넘었다.


이젠 이런 작은 일로 다투지 않는다. 그냥 그가 좀 더 운전하며 수고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불평하지 않 입을 다물었다. 그도 미리 검색해서 돕지 못한 나를 탓하지 않는다. 서로 탓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한마디씩만 꺼냈어도 다툼이 일었을 것 같다. 어쩌면 그 길로 까지 내달렸을지도 모르겠다.


맛집을 검색하니, 고추장 삼겹살로 맛있는 부부 농장 식당과 깔끔한 마중 한정식 두 곳이 보인다. 남편은 두 곳 중 별점이 더 높은 곳으로 가자고 한다. 나는 카페처럼 보이는 한정식집으로 가고 싶지만, 그가 말한 곳 가격이 적절해서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미 지쳐 있었기에 어디를 가도 입맛이 없을 것 같았다.

 

예상 밖으로 깔끔한 외관에 멋진 식당으로 들어가니 번호표를 들고 줄을 길게 선 이들이 눈에 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산대로 들어가 주인장에게 물으니 점심시간 번호표는 이미 마감이란다. 불안한 마음에 근처 한정식집에 전화를 넣으니, 그곳도 마찬가지다. 저녁 식사부터 예약 가능하다는 말도 전해준다. 광복절 휴일에 많은 이들이 청남대를 찾았나 보다.


뒤돌아서 자동차 문을 열고 앉으며 그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메뉴와 식당 결정으로 미리 다투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젠 별 중요한 일이 아니면 그냥 넘어가 주는 중년이다. 그래야 서로 편하다. 근처에 중국집도 보이고 바로 맞은편에 청국장 가게가 보인다. 꿩 대신 닭이라고, 맞은편 청국장집으로 가서 6번 번호표를 받았다. 우리처럼 밀려 넘어온 이들이 많다.




줄을 서서 식당 내부를 구경했다. 식탁 위에 차려지는 음식도 보이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직원도 보였다. 그 복잡한 손님들을 척척 받아내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직원이 눈에 띄었다. 1인 3역은 거뜬히 해낸다.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주문도 받고 서빙도 하면서, 계산까지 담당한다. 손과 발뿐만 아니라, 눈도 빠르다. 목소리는 짜증 없이 오히려 손님들을 즐겁게 한다.


넓은 머리띠로 깔끔하게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뒤로 말아 올린 머리에 자세히 보니 볼펜을 꽂아두었다. 손님들에게 번호표를 메모해 주면서 주문내용과 인원을 손등에 적어낸다. 줄 서 있는 손님들의 순서도 헷갈리지 않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한다.

먼저 식사를 끝낸 손님들이 일어나자 6번인 우리 부부는 안내받았다. 그리고 우리 오른쪽 테이블에 7번 모녀가 앉았다. 그녀들이 급하게 주문하려 하자, 멋진 여직원은 잠시 기다리라 친절히 말한 후, 우리 주문을 먼저 받아준다. 아... 시원하고 기쁘다.

우리 식탁과 붙어있던 왼쪽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부부가 일어나자, 빈 그릇을 치우면서 우리에게 "실례하겠습니다" 친절히 말하면서 그릇을 치워낸다. 오... 괜히 예뻐 보인다.


건너편 테이블에서 반찬을 더 주문한 모양이다. 그녀는 웃으며 달려가더니 "오이 가지 김치, 오이 가지 김치,..." 중얼거리며 주방으로 향한다. 정신없이 북적이는 가운데 손님들의 주문을 잊을까 봐, 바쁜데 받아 적지는 못하고 사라지는 그녀가 멋져 보인다. 잠시 후, 그녀는 팔목과 손등에 반찬을 안전히 올려서 주문한 테이블에 반찬을 전달한다. 어머나, 묘기도 하네!!


시선을 고정하거나 뚫어지게 보는 것은 민망할 듯하여, 양배추에 갈치속젓을 올리면서도 두 귀는 온통 그녀에게 가 있다. 밥 먹는 내내 즐거웠다. 꿩 대신 닭이라며 들어왔던 식당음식이 맛있고 유쾌했다. 저런 직원을 데리고 있는 식당은 복이라 생각되었다. 나중 밥을 먹다 단골손님의 얘기 중에 들어보니, 그녀는 이 식당 주인의 딸이었다.


가족은 역시 다르다. 내 것이라 여기면 온 힘을 다해 일을 해낸다. 부지런하고 친절한 딸을 데리고 식당을 운영하는 나이 든 엄마가 든든하게 보였다. 나중 학교 다녀왔다고 인사하는 초등학생 딸아이마저 유쾌한 어투를 장착하고 있어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들의 얼굴이 예뻐서가 아니라, 어투와 태도가 멋져서 최고로 예뻐 보였다. 기분 좋은 말은 주변 여러 사람까지 즐겁게 한다.




맛있게 식사한 남편은, 파인애플을 팔러 식당에 들어온 과일 장사꾼에게 과일을 주문하고 1만 원을 이체해 주었다. 이런 남편의 모습은 오랜만이다. "나 파인애플 좋아해" 무심한 듯 말하며 다시 쌈을 싸는 남편의 말에 잠시 당황스러웠다. 무엇을 줘도 음식에는 별 관심 없이 끼니를 채우기 위해 먹는 남편이라,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는 줄 알았다. ‘기억할게, 파인애플’. 여행은  상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파인애플 두 개를 깎아 통에 담아 온 과일 장수 아저씨는 감사하다며 총총 사라졌다. 오른쪽에 앉은 모녀는 상술을 미리 차단해 과일 장수가 얇게 썰어 준 파인애플을 지혜롭게 거절한 터다. 쌈용으로 식탁에 올려진 넓은 깻잎을 한 장 들어 그 위에 파인애플 네 조각을 올리고 옆으로 전달했다. "너무 많아서요"  옆에 앉은 7번 테이블 딸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니, 맞은편 엄마가 감사히 두 손으로 받다. 함께 후식을 나누니 이 식당 점심이 더 즐거워진다.




파인애플 후식과 함께 푸짐한 우렁이 쌈밥을 건하게 먹고 밖으로 나왔다. 즐거운 점심으로, 최고 맛집이었다. 우리를 거절한 맛집 두 곳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고받는 좋은 말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좋은 말로 배려하는 유쾌함 식당에서 만난 그녀에게 배다. 좋은 말은 좋은 관계를 이어가게 한다는 것을.


자, 이제 대통령들의 별장 청남대로 출발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따뜻한 라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