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가다 Jul 28. 2023

저는 따뜻한 라테요

선택은 내가 하겠어요

오랜만에 반가운 이를 마주친 기분이다. 터미널에 아이를 내려주고 지나는 길, 7년 전 커피가 맛있던 바로 그곳이다.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기도 해서, 가고 있던 목적지를 취소했다. 가게 앞에 차를 멈추고 카페로 들어섰다.

멋진 수입 찻잔들이 진열장에 가득하다.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흐르 에어컨 바람으로 실내는 기분 좋게 시원하다. 원두를 볶는 작업장이 밖으로 있고, 빵을 만드는 조리실도 옆으로 비친다. 커다란 건강빵이 포장되어 진열되었다. 크리스마스 빵으로 유명한 슈톨렌을 얇게 썰어 제공하는 곳. 내 기억은 그랬다.

보문단지에 새로 생겨난 체인점에서, 1년 전 슈톨렌 한 조각과 핸드 드립 커피를 마셨던 기억도 다.


커피콩 싹이 콩 껍질을 그대로 머리에 얹고 모종판에서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커피 모종  화분이 가득한 상자에는 가격이 쓰여 있다. 초보 농부의 눈에 초록싹이 보이면 매번 발걸음을 멈췄다 간다. 구입하는 대신, 사진으로 여러 차례 담아보았다.


윤기 흐르는 커피 모종...  탐난다~



 

말끔하게 7대 3으로 머리를 빗어 뒤로 틀어 묶은 50대 바리스타는 야무진 목소리로 환영한다. 눈을 들어 전광판에 적힌 메뉴판을 보니 핸드 드립 커피 종류가 복잡하다. 요청에 따라 바리스타는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커피를 소개한다.

“지난번 보문 매장에 들렀는데, 슈톨렌 한 조각 추가된 세트 상품 있나요?”

“1번 같은 2번 어떠신가요? 콜롬비아 커피로....” 그 이후의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음... 콜롬비아면 신맛이 아닌 거죠? 게이샤 1번 주세요”

“아... 1번은 8천 원이 아니고 8만 원이랍니다.”

눈을 끔뻑 다시 뜨면서 가격표를 보았다.

 

“저는...  따뜻한 라테 주세요.”

“네~”

 

바리스타는 멋지게 뽑은 라테와 함께 건강빵 한 조각을 선물로 주었다. 그녀의 설명은 친절하면서도 직업의식이 투철해서 멋졌다.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후추를 갈아 올리면서 그녀는 말한다.

“노 슈가, 노 에그로 건강한 빵이랍니다. 방문해 주셔서 선물로 드려요.”

그녀가 건넨 둥근 쟁반을 들고 테이블에 돌아와 앉았다.


하얀 찻잔에 그득 담긴 하트 문양은 기분 좋게 우아하다. 조심히 잔을 들어 입에 대니,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고 목 넘김이 부드럽다. 전문가다. 혀에 거슬리지 않고 온도까지도 안성맞춤이다.

빵을 입에 넣고 깨물었다. 잠깐 다시 구웠는지 따뜻함과 바삭함으로 기분 좋다. 겉 바삭 속 촉촉. 위에 올려진 올리브 오일과 매콤한 후추가 맛을 더한다. 빵은 커피와 섞지 않고 천천히 씹으며 삼켰다.

 

원하는 대로 주문하면 결과물이 부족할지라도 원망 남지 않는다. 추천으로 가장 좋은 조합을 얻은 것이라면 더더욱 좋겠지만, 맞는 가격과 좋아하는 것으로 본인 의지로 선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세월이 흘러도 삶의 방식은 더 나은 것으로 계속 연습한다.




'선택 장애'를 말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다양한 현대 사회에서 선택할 옵션이 다양하기에 그 어려움은 더 크다. 작게는 시간, 사람, 환경 등이 그러하고 크게는 진학, 진로와 삶의 방식 등 미래에 관한 것들이 그렇다.

점심으로 음식을 선택하는 일도 고민을 통과한다. 중식과 일식, 한식 중에 어떤 것으로 택할지부터 장소를 위한 선택의 시작이다. 식사는 언제 하며, 누구와 함께 할 지도 선택이다. 메뉴판을 놓고 가격과 사진을 비교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앞에 놓인 음식을 놓고도 다 먹을지, 양을 조절해 남길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카페에 들어서서 라테 한 잔을 선택하기까지 여러 옵션들이 있었지만 딱 한 가지 선택했다. 시내에 수많은 카페 중 이곳 추억의 장소를 선택했고, 커피 모종을 사고 싶었지만 눈으로만 보았다. 핸드드립으로 더 비싼 메뉴를 고를 수 있었지만 한 시간 동안 커피 한 잔을 마실 계획이었기에 적당한 금액으로 좋아하는 메뉴를 결정했다. 날씨가 더운 여름이었지만 찬 음료를 지양하는 요즘 따뜻한 것으로 주문했다. 넓은 매장에 좌석은 많았지만 잠시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책상이 마음에 드는 곳으로 앉았다. 책을 읽다 갈까 했지만 노트북을 펼쳐 짧은 글을 썼다. 두 시간 앉아 시간을 보낼까 했지만, 바리스타 마음을 힘들게 할까 싶어 한 시간으로 알람을 설정하고 퇴실 시간을 결정했다. 와이파이 비번을 물을까도 고민했고, 진열장 가까이 예쁜 디저트를 사진 찍을까도 생각했다. 한 시간 동안 머릿속으로 지나간 수많은 선택지를 생각해 보니 놀랍기도 하다.

작은 일에도 매번 완벽한 선택만 있을 수는 없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더 좋은 선택을 연습하고 결정에 대한 자신감을 얻는다.  




하루 중에 비교하며 선택해야 하는 일은 얼마나 많은지... 작은 일에는 바로 결정을 내리지만, 큰 일에는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비교 분석하면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연습이 필요하다.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는 연습, 정보 수집과 조사 연습, 자기를 탐색하여 목소리를 내고 의지를 더하는 연습, 선택이 완벽하지 않을 수 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그렇다.

 

커피 한 잔에도 여러 번의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자유의지가 있음이 감사하고, 선택의 주체가 되는 것도 감사하다. 결정권이 나에게 있는 상황이라면,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크게 내겠다.

“저는 따뜻한 라테요!”


커피가 맛있는 카페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 드는 것이 좋아지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