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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Sep 06. 2023

첫 살림

살림, 가장 작은 세상 속으로 입장

 결혼하면서 처음으로 살림을 시작했다. 새로운 세상에 입장해, 가장 작은 세계를 운영하는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그는 바깥 살림을, 나는 안살림을 맡았다. 그는 입사한 지 1년 된 회사원으로서 둘의 세상을 살림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부하다 직장을 멈춘 초보 살림꾼으로서 안살림을 시작했다. 결혼을 통해 새살림을 시작하고, 분가함으로 각살림을 열어간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갖는 의미는 제법 특별하다.


부모에게 독립해서 가정을 열어간다는 것은 작은 국가를 탄생시키는 것과 같다. 리더, 영토, 국민이라는 3요소와 가정만의 작은 규칙까지도 탄생한다. 부부로 시작한 작은 가정이 잘 세워져야, 사회가 안정되어 번창하고 국가도 강성해진다. 먹고 살아가기 위한 각각 살림은 세상 돌아가는 활동의 기본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나 혼자 산다’라는 티브이 프로그램 속에서도 소규모 살림이 주목받고 있다. 혼자 살아가면서도 살림은 필수다. ‘살림’은 ‘가계, 경영, 관리’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얼마 전, 딸아이가 동생과 함께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대학 시절 잠시 자취를 경험한 딸아이와 기숙사 생활만 해봤던 아들이 함께 살게 된 것이다. 먼저 재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을 나눴다. 취업을 다시 준비하게 된 딸이, 집에 대한 월세 절반을 감당하기로 하면서 일은 빨리 진행되었다.

진정한 독립은 돈에서부터 시작한다. 재정 부분을 감당하겠다는 말에 서울살이 손을 들어주었다. 돈 문제는 살림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보통 ‘살림을 잘한다’는 말은 요리, 정리 정돈과 함께 재정을 잘 다룬다는 말에도 사용한다. 그렇게 보면, 나는 그다지 살림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남편과 아이가 살림을 잘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자취를 시작하고부터, 식비를 위한 통장을 만들도록 권했다. 두 아이는 회의를 통해 매달 식비를 위한 공금을 만들었다. 본가에서 약간의 지원금을 제공하고, 매달 간단한 공산품과 식재료를 배송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독립시켜 보는 살림이라, 우리 부부도 연습 중이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지켜보면서 도움을 줄 예정이다. 아이들의 살림 살아가는 모습을 듣고 보면서 자꾸만 우리의 서툴렀던 신혼생활이 생각난다. 25년이 흐르는 동안, 퇴보가 아닌 발전이라 다행이다. 살림은 더 나아졌고 발전되고 있다. 살림, 우리의 삶 말이다.

 

아이들과 집을 구하러 돌아다녔다. 아들이 다니는 대학교 앞에 두 아이의 마음을 모두 만족시키는 집을 구하기는 꽤 어려웠다. 허름한 집 구조에 조금만 넓어져도 비용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무엇보다 방 크기가 공평하지 못해 아들의 입은 자꾸만 튀어나왔다. 방값을 절반 감당하니, 딸은 무조건 큰방을 사용하려 했다. 결국 학교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동네로 옮겨 집을 구하러 다녔다. 오히려 학교 앞을 벗어나니, 적당한 가격의 깨끗한 집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두 아이가 모두 눈을 반짝이며 동의한 집은, 단층 구조에 두 개 방 크기가 동일한 집이었다. 게다가 널따란 다락이 붙어있어 공간을 더 소유할 수 있었다. 돈을 주고 자신의 공간을 얻어내는 일이 얼마나 고된 것인가를 직접 겪는 경험이었다.


부동산 사장님과 얘기를 주고받는 자리에는 아이들을 앉혔다. 본인들 이름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결정하는 상황을 우리는 뒤에 앉아 지켜보았다.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무게를 아이들이 잠시 경험하는 사실이 좋았다. 나중 결혼이라는 새로운 살림을 연습해 보는 일이라고 몰래 세워보는 우리의 작전이라고나 할까.

 



이사를 약속한 날이 되었다. 자녀들의 이삿짐을 승용차에 가득 실었다. 차곡차곡 테트리스를 쌓듯 트렁크와 물건을 발밑까지 채워서 네 시간을 달려야 했다. 딸아이가 욕심껏 주차장까지 들고 내려온 에어프라이어는 다시 올려두었다. 엄마인 나는 당장 아이들이 음식을 해 먹고, 편히 잠들 수 있는 간단한 살림살이들을 차에 실었다. 서울 집에 도착해서는 근처 다이소에 들러 청소용품과 살림 도구들을 구입했다. 근처 대형마트에 들러, 먹거리와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했다. 그리고 쓰레기봉투까지도 넉넉히 준비해 주었다. 좁은 집에서 미니멀로 꼭 필요한 것들로만 채우도록 조언하고 다시 강조했다. 살림에 대한 부분은  가르칠 것이 많다. 삶을 조언하면서는 나 자신도 함께 배움을 입는다.

 

이틀 밤을 함께 지내는 동안 도어록과 방충망을 손봐주고 간단한 가구 들이는 일을 살펴주었다. 완벽한 준비는 아니지만, 고생도 인생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계속되는 아쉬움을 내려놓았다. 아직 어수선한 좁은 집에 두 아이를 남겨두고 남편과 차에 올랐다.

조심조심 골목을 비켜 나와 자동차가 서울 대로에 들어섰다. 문득 첫딸을 결혼시키고 마음 졸여하던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서툰 손으로 시작하는 신혼살림을 염려하면서도, 엄마는 스스로 감당해 보도록 조용히 뒷짐을 지셨다. 그리고는 세 아이들을 키우며 도움을 요청할 때면 언제든 기꺼이 달려와 주셨다.  무엇보다 새로 독립시킨 가정이 스스로 잘 설 수 있도록, 한 발짝 물러서서 살림을 응원하고 도우셨다. 생각해 보니, 엄마에게 배운 대로 '한 발짝 뒤로'를 하는 중이다.



 

혼자든 둘이든 살림은 스스로 경험하고 독립해 보아야 한다. 스스로 먹고 입는 일을 통해 자신을 챙기는 연습을 한다. 작은 살림을 통해 독립도 훈련하는 것이다. 자녀들이 자취하는 것이 고생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해볼 기회다. 의식주를 해결해 보는 첫 살림을 통해 안살림과 바깥 살림을 배울 수 있겠다. 지금 조용히 뒷짐을 지고 있지만, 급한 요청이 있을 때면 기꺼이 서울행 기차를 타려 한다. 여전히 서로 돕고 챙기면서도 투닥거리는 남매의 첫 살림을 한 발 뒤로 물러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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