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각지로 흩어져 있던 가족들을 끌어모아 여행을 떠났다. 이스라엘과 스페인을 2주 일정으로 현지 아파트를 세 군데 예약했다. 처음에는 여행비용을 줄이려는 목적이 컸다. 호텔이나 숙소가 아닌 가정에 머무르게 되어, 그네들 생활방식을 잠시 엿볼 기회가 되었다.
한국에는 눈 내리는 겨울날, 이스라엘 나사렛 동네는 가을처럼 시원했다. 첫날 숙소로 들어간 곳은 언덕배기에 위치한 아파트 1층. 늦은 밤, 일방통행인 골목을 렌터카로 세 번이나 다시 돌아서 겨우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주인과 문자로 주고받으며, 열쇠는 작은 대문 옆 토기 화분 밑에서 찾았다. '딸깍‘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제일 먼저 둘러본 곳은 거실 옆 부엌이었다.
긴 식탁 옆으로 조리대와 싱크대가 보였다. 서랍장 아래와 위를 열어보며 식기와 조리도구를 살펴보았다. 아파트를 빌려 삼사일을 사용할 예정이라, 기본적인 살림 도구가 모두 갖추어졌는지 확인했다. 요즘 한국에서도 익숙하게 볼 수 있는 구조와 살림도구들이었다. 대부분은 비슷했지만, 특히나 눈에 띄는 것은 싱크대 수조 아래에 다양한 청소용품을 둔다는 것이다. 청결을 중요시하는 이스라엘의 특성을 떠올리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라엘은 부엌 위생을 철저히 하고, 유대교 엄격한 식품 규정에 따라 코셔 식품을 사용한다.
한국에서 살림 고수들은 싱크대 아래에 여러 구조물을 설치해 버리는 공간이 없이 알뜰하게 구분 지어 사용한다. 인터넷을 통해 배우게 되는 살림은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벽하고 멋지다. 보통 싱크대 아래로 냄비와 프라이팬 등 조리도구들을 넣고 칸을 만들어 보관한다. 때로 쌀과 곡식류를 보관하기도 한다. 많이들 그렇게 하므로 의문 없이 따라 그렇게 정리해 두었다. 그런데, 타국인의 살림살이를 보면서 얻는 새로운 정보가 괜찮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싱크대 아래에 있던 냄비와 프라이팬을 꺼내고, 베이킹소다와 수세미 등 부엌용 청소용품으로 자리를 바꿨다. 살펴서 내게 맞는 것만 가져와서 사용하면 된다.
두 번째 숙소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1층 아파트는 깨끗한 살림 도구들로 기분 좋았다. 이케아 매장 모델하우스에 들어온 듯 블랙과 화이트로 통일되어 모든 것이 깔끔했다. 까만색 나이프와 포크는 날씬한 디자인에 가벼운 재질이었는데, 할 수만 있다면 따라서 구입하고 싶었다. 모서리 없이 둥근 디자인과 블랙으로 통일시킨 냄비와 프라이팬 덕분에, 파스타와 치킨을 요리하면서도 콧노래가 나왔다. 다양한 식기류와 향신료를 구비해 놓은 이스라엘 찬장이 마음에 들었다. 장을 봐서 요리하고픈 마음이 절로 일었다. 가까운 대형마트에 들러 4일간 사용할 재료를 구입했다. 이스라엘 식당 물가는 비쌌지만, 식재료는 다양하고 가격이 저렴했다.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려 '맥도널드'에 들어갔다가, 1인 버거 세트가 2만 원 훨씬 넘는 사실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온 일 때문이었다.
토마토와 달걀을 올리브오일에 볶아 토달볶음을 아침마다 차렸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사서 다양한 샐러드를 만들었다. 애플망고와 사과, 자두, 바나나와 스타푸룻 등 풍성한 아열대 과일과 샌드위치 도시락을 챙겨 매번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예루살렘 깨끗한 부엌과 식기 덕분에 매 끼니가 즐거웠다. 고된 여행으로 피곤해 돌아와도 깨끗하게 정돈된 부엌 덕분에 살림이 싫지 않았다. 아침과 저녁으로 가족들은 부엌에 자주 모였다. 편리한 가전제품과 조명이 예쁜 넓은 식탁은, 식사뿐 아니라 여행을 위한 회의 장소로 사용했다. 부엌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여행하면서 다시 알게 되었다. 부엌은 먹이는 곳, 모이게 하는 곳, 정이 오가는 곳이다.
부엌은 살림의 시작이자 중심이 된다. 식사를 준비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가족 구성원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는 공간이 된다. 밥상머리에서 교육이 시작되고 하루 한 번은 얼굴을 마주하려 일부러 만남의 장을 마련하는 곳이 부엌이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위생적인 환경을 유지하려 애쓰는 곳이기도 하다. 경제적 부담과 낭비를 줄이기 위해, 가정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때로는 함께 요리와 베이킹을 통해 소통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1인 가구여도 간단하고 작게라도 소유하고픈 곳이 부엌이다. 부엌에서 아침이 시작되고 저녁이 마무리된다. 먹고 살아가는 일이 중요한 만큼 소중하게 여겨지는 장소다. 주부로서 부엌살림은 중수쯤 되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부엌을 추구하는 마음은 놓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부엌살림 고수들의 사진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영상을 종종 따라 한다. “살림에는 눈이 보배라”는 말을 따라 눈썰미만은 고수를 꿈꾼다. 글감을 잘 가져와 다양하게 써먹는 눈썰미 있는 작가이고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