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을 옆으로 펼쳐서 조금 부족한 길이다. 두툼한 목재로 네모반듯하고 견고하게 이어 붙여서, 나뭇결과 틈이 그대로 보인다. 진한 고동색과 하얀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유리판을 깔아, 다섯 결로 이루어진 넓은 상판이 보인다. 두 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큼직한 칸을 나눠, 보기에도 시원한 책꽂이. 아들의 책상이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용인시 가구단지에서 큰마음먹고 똑같은 모양 두 개를 샀다. 쌍둥이 아들 방에서 이층 침대 맞은편으로 나란히 자리했던 책상이다. 판매하던 사장님은 나중 아이들이 크면 부엌에서 찬장(cupboard)으로 사용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진열된 모양새가 찬장과 비슷하고 그만큼 색도 예뻤다. 값이 꽤 비쌌다.
입주하던 새집에 두 개 책상을 나란히 두었다. 책상은 키 작은 아이들이 숙제하는 도서관이 되었고, 발 딛고 오르고 숨기도 하는 놀이터가 되었다. 때로는 털썩 올라앉아 밖을 내다보는 의자가 되기도 했다. 이사할 때마다 두 개 무거운 책상은, 큰 트럭에 실어서 꼭 챙겼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각방 공부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창 옆 가장 좋은 자리에 책상을 두고 먼지를 자주 닦았다. 고등학교 3년을 졸업하기까지 아이들에게 제일 소중한 가구라 여겼다. 각종 문제집과 책으로 빼곡히 채워진 작은 도서관이었다. 중간에 이사하면서도 아이들 책상만큼은 사수하며 소중히 여겼다.
다시 한번 이사할 때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다. 이삿짐센터 아저씨에게 책상 한 세트를 건네주었다.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있다는 트럭 운전사는 아주 기쁘게 책상과 책장을 실어 담았다. 아들과 아내가 무척 좋아할 것이라 했다.
대학생 아들은 좁은 방에서 책상을 빼고 다른 소가구를 들여놓고 싶다고 했다. 아들방 옷장 앞에 전신 거울과 작은 테이블을 놓았다. 집안을 둘러보며 책상 놓을 곳을 찾았다. 식탁 맞은편 한구석이 보였다. 줄자를 들어 이리저리 재고 책상 놓을 자리를 만든 후, 비집어 넣었다. 책과 문구를 모두 덜어낸 책상은 가구점에서 처음 봤던 그 모습이었다.
구석구석 먼지를 닦고 얼룩도 제거하니 새 가구처럼 보였다. 커피머신을 올리고 드립커피 도구들을 올렸다. 종류별 차를 원목 케이스에 넣어 진열했다. 예쁜 찻잔과 접시랙도 올렸다. 의자를 집어넣었던 뚫린 공간은 아이보리색 커튼을 달아 가렸다. 아들 방문 옆에 위치하게 된 책상은 부엌에서 가장 빛나는 가구가 되었다. 집에 온 손님들은 멋진 홈카페라며 칭찬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구입한 책상이라 말하면, 모두 입을 가리고 놀라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멋진 부엌 가구로 3년을 자리했다.
이곳 경주로 다시 이사하면서 책상을 버리거나 팔기를 고민했다. 아이들은 모두 성인이 되어 독립했다. 가끔 본가에 내려오면 며칠간 잠만 자고 떠난다. 빈집을 머릿속으로 구상하면서 처음에는 이 거대한 책상을 빼려 했다. 부엌도 이미 자리가 다 잡혀있고 수납공간이 넘치도록 충분했다. 찬장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모든 짐을 가볍게 정리하려 했다. 그런데 결국 이 책상은 작가의 골방 글쓰기 책상으로 들어와 앉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이 시간, 나는 그 책상에 앉아있다. 비가 오는 어둑한 아침, 스탠드를 켜고 노트북을 펼친다. 나만의 글쓰기 세상이 열린다. 딸 방에서 가장 밝고 좋은 창가에 자리 잡았다. 책상 위에는 세 개의 하얀색 둥근 연필꽂이가 나란히 세워졌다. 이사하면서 아이들이 사용하던 문구를 종류별로 구분 지었다. 형광펜, 볼펜과 샤프펜슬, 가위와 칼등 소도구가 다양하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수명이 끝날 때까지 내가 마무리 지으련다. 책상 왼편에는 직사각형 스케줄표와 세우는 달력을 놓았다. 요일별로 할 일을 메모해 두었다. 수업 요일과 시간을 자주 헷갈리는 나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메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책상 위쪽 선반에는 최근 읽고 있는 책들로 세워두었다. <어른의 어휘력>, <아티스트웨이>, <모든 삶은 흐른다> 그리고 두툼한 성경.
이 책상에는 쿠션이 가장 편하고 모양도 예쁜 원목 의자를 놓았다. 발밑에는 두 발을 올릴 네모난 발판을 두었다. 그리고 책상 옆에는 자주 사용하는 하얀색 장 스탠드를 놓았다. 성경을 펼치며 이곳에서 아침을 시작하고, 일기를 쓰면서 늦은 밤을 마무리한다. 넓은 고동색 책상은 언제 앉아도 마음 편한 좌석이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공부하고 쉬고 놀았던 것처럼, 이제는 나이 든 여자가 이곳에 앉아 놀고 쉰다. 그러다가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다가 한숨을 쉬기도 한다. 먼 산도 바라본다. 엄마들에게도 앉아서 글을 쓰고 놀고 쉴 책상이 필요하다.
매번 함께 이사 다녔지만, 멋지고 웅장한 모습으로 여전히 버티는 책상이다. 어떠한 모양으로든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 나와 닮았다. 어떤 곳에서는 아이들의 책상이 되었다가, 부엌의 진열장도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시골 사는 작가의책상이 되었다. 이 물건은 끝까지 내 것이요 내 쉼터가 되겠다. 나와 언제까지나 동행해 줄 것 같다. 쉽게 싫증 내지 않는 나와 닮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