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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Oct 12. 2023

나를 살린 8할은 텃밭과 글쓰기

살림에 들어온 텃밭을 환영해

지하철 편리하고 사람 북적이는 도시에 사는 게 좋았다. 가끔 미술관 가고, 공연 보고 백화점도 가고.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교육 환경도 맘에 들었다. 산과 들로 둘러싸인 시골로 이사하는 일이 두려웠다. 20년 넘도록 열두 번 이사로 겁내지 않을 만도 한데, 편한 곳에서 불편한 곳으로 이사는 또 다른 계산이 시작된다.


두 달 적응 기간을 두고 부산과 경주를 오갔다. 결국 경주행을 결정하게 된 이유가 여러 가지였지만 집 근처 텃밭은 큰 이유가 되었다. 4월 말, 거름 주어 준비된 텃밭에 모종만 심으면 된다는 남편의 말에 마음이 급했다. 이사 전부터 텃밭을 오가며 여섯 이랑을 분양받았다. 텃밭을 가꾸며 글을 쓰면 딱 좋겠다는 계산이었다. 조용한 시골 아파트에서 글을 쓰고,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 꿈같은 일이 이루어졌다. 은퇴 이후 생각한 귀농 삶이 내게 온 것이다.


고생 빤한 일이었다. 농부 아들인 남편은 몇 차례 신중히 결정하라 말했다. 얼굴은 새까맣게 타고, 고생할 일이 많은 거라며 자꾸만 겁을 줬다.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으니 고생해도 겪어보자는 마음이었다. 이런 기회를 언제 또 얻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냥 모험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글 쓰는 작가로서 새로운 글쓰기 소재가 생기는 일이었다. 마음 바뀌기 전에 무조건 확정 짓고 진행했다.

 



모종을 심던 4월 말부터 삶의 패턴은 예전과 달라졌다. 새로 심은 상추와 치커리 오이가 보고 싶어 이른 아침부터 텃밭으로 출근했다.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둘러보게 된 텃밭은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다.  아침 식탁 메뉴는 수확한 채소를 사용했다. 매일 야채와 과일 샐러드로 가볍게 식사했다. 6월과 7월에는 매일 오이를 자르고 가지를 구웠다. 바질잎을 따서 페스토를 만들고, 루콜라를 수확해 고급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깻잎과 쌈 야채로 삼겹살을 자주 굽게 되고, 고추를 따서 곁들였다.


세 그루 토마토와 일곱 그루 방울토마토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열매 덕분에 요리법을 검색해야 했다. 올리브오일 뿌려 오븐에 구운 방울토마토는, 샐러드에 귀한 재료가 되었다. 살짝 데친 방울토마토 껍질을 벗긴 후,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로 버무린 마리네이드는 그냥 먹어도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텃밭에서 나오는 다양한 식물 덕분에 할 수 있는 요리가 늘어만 간다. 이 가을에는 밭에서 자라는 케일을 사과와 갈아 주스를 만들고, 바나나와 고구마를 섞어 스무디를 만든다.

 

이틀에 한 번은 바구니를 들고 텃밭에 입장한다.

자주 들렀던 마트에는 과일과 고기를 사러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들르게 되었다. 여섯 이랑 텃밭은 삼십 배 육십 배 열매를 안겨주면서 가계 살림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텃밭은 중년되어 글 쓰는 내게 큰 변화를 주었다. 흙을 밟고 열매를 따면서 여러 가지 사유를 얻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빈 땅에 작은 씨앗을 심으면서 열매를 기대한다. 비가 오고 해가 내리쬐는 일기를 신경 쓰면서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자연의  섭리를 천천히 관찰하는 여유를 누린다.


진딧물과 공 벌레, 굼벵이를 잡으면서 채소를 돌본다. 손톱보다 작은 씨앗에서 커다란 열매와 이파리로 안겨주는 생명의 신비함자주 놀랜다. 텃밭에 심어진 식물을 다 먹을 수 없어 이웃과 나누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재미있는 글쓰기가 된다. 특별히 텃밭 근처에서 피어난 들꽃들은 하늘의 축복으로 여겨졌다. 봄에는 개양귀비가, 여름에는 범의꼬리와 마리골드,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구경하고 한 송이씩 꺾어 식탁 화병에 꽂았다.


고구마를 캐면서, 막 태어난 새끼 쥐 다섯 마리에게 젖 먹이던 어미 쥐를 놀라게 해 긴장한 일이 있다. 배춧잎을 자꾸만 뜯어먹는 애벌레와 깨끗한 잎을 경쟁하며 나누기도 한다. 가을 씨앗을 땅에 심으면서, 글에서 배운 대로 자연과 나누어 먹는 착한 마음을 배운다.


“농부가 씨를 심을 때 보통 세 알을 한 구멍에 심는다. 하나는 땅속 벌레 몫,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 나머지는 농부의 몫이다.”

 



개인 차량이 없으면 마음껏 움직이기 어려운 시골이다. 한가한 시골이지만 내 삶은 오히려 바쁘다.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텃밭에 들른다. 이른 아침과 저녁에는 시골길 산책하면서 하루를 여닫는다. 텃밭을 일구며 글 쓰는 일상은 오늘도 나를 살아가게 한다.


영화관과 백화점이 아닌, 텃밭과 책상에서 보내는 깊어진 가을이라 생각하며 멋진 기회를 누린다. 텃밭을 손들었던 용감한 선택을 칭찬하고, 남편을 따라 시골로 들어온 발걸음을 귀하다고 여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더 좋은 방향으로 나를 이끈다.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지금, 삶이 신난다. 열심히 그렇게 만들어 가는 중이다.


작가의 삶에, 중년의 살림에 갑자기 들어온 텃밭을 온 마음으로 환영한다.



텃밭에  있는 꽃길...


텃밭에서 키운 케일로 갈아 만든 케일 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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