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어려운 수업 중 하나가 바로 살림이다. 결혼해서 주부가 되면 자연스럽게 살림을 잘하는 줄 알았다. 아이 낳으면 음식은 절로 맛있게 하는 줄 알았다. 세월이 쌓여도 여전히 살림은 재미없고 어렵다. 사실, 생각하는 살림 기준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SNS에서 보이는 살림꾼들의 주방은 모델하우스처럼 예쁘고 깨끗하다. 백 점짜리 살림이 되려 하니 어려운 것이다. 주방과 식탁은 아무것도 없어야 깨끗한 것을 누가 모르나, 바닥에 놓인 물건 없이 공중에 매달거나 차곡차곡 정리해야 하는 것은 유치원생도 알겠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모두 제자리, 모두 제자리, 모두 모두 제자리.” 노래 부르며 함께 정리 정돈했다. 50이 다 되어 그 배움을 다시 시작했다. 모두 제자리!
25년이 흘러가는 동안 남편의 지방 발령으로 10여 차례 이사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열두 번째 집이다. 회사 사택에 살기도 했고, 전셋집을 전전하다가 자꾸 팔리는 바람에 한 단지 내에서 두 번이나 이사하기도 했다. 청약으로 집을 분양받아 새집에서 7년 살았다. 남편의 발령으로 집은 세를 주고 지방으로 이사했다. 이전하는 동안 가구는 부딪치고 살림살이는 부서졌다. 정성 들여 집안을 꾸며놓으면, 집을 보러 온 입주 예정자가 계약을 확정 지어 집이 당장 팔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설움이 컸는데, 나중에는 그냥 내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도 좋은 점이라면, 자주 이사하면서 깊숙이 숨어 있던 짐들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번씩 온통 뒤집어서 정리하는 바람에 새 마음과 새 기분으로 살림을 다시 시작한다. 이사가 아니었다면, 창고 속에는 신혼 때 구입한 물건들이 아직도 쌓여있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좋게 생각하니 또 그 가운데서 좋은 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나는 깊숙이 안쪽까지 끄집어내서 정리하는 사람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곳들은 재빨리, 보기 좋게 정리할 줄은 안다. 아마도 세월이 가르친 부분도 있겠지. 정리 정돈된 공간을 자주 눈여겨보면서 눈썰미가 생긴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깊숙한 내부까지 정리하는 일은 부지런한 습관이 들여져야 한다. 남들은 모르는 고민이요, 단점이기도 하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모두 꺼내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보여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기초부터 잘 세우는 것이다.
1년 전, 정리 정돈과 청소를 배우고 실행해 볼 기회가 있었다. 함께 글을 썼던 블로그 지인이 정리 정돈 컨설턴트와 손을 잡으면서 수강생을 모집했다. 약간의 비용을 내고서, 사진으로 살림을 점검받고 조언을 얻는 모임이었다. 3개월간 스스로 세운 계획표대로 구석구석 청소하고, 매일 사진을 찍어 결과물을 공유했다. 그런후, 조언을 들으면서 정리 순서와 방법들을 수정해 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말끔해졌다. 매일 15분씩, 정리와 청소를 진행하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한 달간 공간별 계획표를 세워 빠진 곳 없이 청소하니,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리되고 깨끗해졌다. 요술봉을 들고 흔들듯 매일 15분은 신기한 마법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실행한다는 것이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리스트를 체크하면서 매일 정리 정돈했다. 반복하다 보니 요령도 생기고 청소 시간도 줄었다. 매일 간단히 화장실과 부엌을 청소하는 일이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대청소보다 훨씬 쉬웠다. 힘주어 솔을 문지르지 않고, 매일같이 간단히 휘리릭 빠뜨림 없이 닦고 가면 물 때와 곰팡이는 남을 겨를이 없다.
3개월 정리와 청소 수업으로 완벽하게 배웠다고 생각했다. 이론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는 것은 많다. 자주 사용하는 속옷과 양말은 허리 높이 서랍장 맨 위 칸으로 넣는다. 옷은 접어서 세로로 수납한다. 싱크대 바로 위 그릇장 공간에는 반복해 사용하는 그릇으로 가족 인원 수 만큼 정리한다. 화장실에는 가장 기본적인 용품만 밖으로 보이게 한다. 책장 중간 두세 칸은 비워두면 더 넓게 보이면서 인테리어 효과가 있다. 책은 색상별로 책길이를 따라 정리한다. 그럼, 우리 집이 여전히 이렇게 진행되고 있냐고? 아니다.
3개월 동안 부지런히 따라 한 습관은 모임을 멈추자 일주일 만에 사라져 버렸다. 물론 다시 이사하면서 배웠던 팁들을 사용해 집을 보기 좋게 정리하기는 했다. 살림에 대한 글을 쓰다보니, 애써 연습했던 그 수업이 생각난다. 이사 오면서 챙겨 온 계획표 인쇄물을 보며 체크리스트를 다시 만들어야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습관들이 증발해 버리지 않도록 붙잡으련다. 언제든 손님이 와도 여유 있게, 깊숙이 문을 열어보아도 놀라지 않기를 소망한다. 안과 밖이 똑같이 정리된 중년이고 싶다.
글쓰기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글을 쓸 때면 쌓아놓은 글감에 망설임이 더해진다. 손가락은 느리고 손목은 무겁다. 매일 2, 30분씩 글을 써서 문장을 만드는 연습을 할 때면, 구성하고 글을 풀어가는 일이 좀 더 쉽게 느껴진다. 수고스러워도 매일 글을 쓰고 읽는 훈련이 되면, 마음에 짐이 좀 더 가벼울 것 같다. 매일 15분 요술봉은 글쓰기에도 필요한 것이었네.
자취를 시작하면서 요리와 정리를 동생과 분담하던 딸이 한마디를 남겼다.
“남자든 여자든 살림을 배워야겠어요. 동생은 설거지만 하고 주변을 정리할 줄 몰라요. 그래서 가르쳤어요.”
50의 나는, 다시 살림을 배우고 글쓰기를 배운다. 더 배워야 할 것 같다.
글쓰기만 하고 끝나는 것 같지만, 퇴고하고 글을 정돈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1인 출판도 배워야겠고, 동화도 배워야 할 것 같다. 살림하듯 그렇게 찬찬히 글을 쓰고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