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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Jul 22. 2024

온 마을이 환영하는 기차마을 퍼핑빌리

둘이서 호주 여행


철길을 지나치며 단체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들. 환한 웃음과 힘찬 손짓이 환영한다는 말로 들린다.


예약한 시간 여유 있게 레이크사이드 역에 도착했다. 가늘게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진다. 옷깃을 여미고 기차역 내부에 있는 식당과 숍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어린이 만화 ‘토마스 기차와 친구들’에 등장한 파란 기차가 굿즈 숍에 진열되어 있다. 아이들 어릴 적 증기기관차 만화 영상이 떠올랐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망울에 말하는 기차들.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기관사 인형, 코알라 인형 그리고 여러 동물 인형이 선반에 가득 채워져 있다. 이곳 호주 멜버른 단데농 산맥에 자주 출몰하는 동물인가 보다. 영화 <토마스와 마법 기차> 포스터와 함께 포토존이 멋지게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기차마을에 출연자로서 영화 일부로 환영받는 묘한 분위기다.


홍역에 걸려 아픈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영국의 윌버트 오드리가 탄생시킨 동화 주인공, 꼬마 기관차 토마스! 홍역에 걸린 아들이었던 크리스토퍼는 어른이 되어 자신의 세 살 아들 리처드를 위해 철도 시리즈를 동화로 썼다고 한다. 토마스 기차 이야기는 책으로, 영화로 제작되어 어린이들의 세계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디젤 기차가 위상을 펼치기 전까지 곳곳에서 많은 일을 해 왔던 석탄 기차는 관광상품이 되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비록 작은 엔진들이라 할지라도 큰일을 할 수 있어."

용감한 토마스 기차는 여전히 기적소리를 울리며 오늘도 달린다.




녹음이 우거진 단데농 산맥에도 100년 이상 역사를 담은 증기기관차가 달리고 있다. 1970년 산사태로 경치 좋은 시골 철길이 끊겨 운행이 중단된 적 있단다. 현지인들이 한마음으로 이곳을 복구하고 마을 사람들이 자원하여 봉사를 이어면서 기관차는 다시 운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총 6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기꺼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이 하나 되어 역사의 맥을 지키는 일은 관광하는 이에게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한다. 그들의 하나 된 소중한 마음에 대하여.


“칙칙폭폭”

기차가 들어올 시간이라고 외치는 한국인 가이드 목소리가 기차 소리에 묻힌다. 회색 연기를 내뿜는 까만 지붕의 붉은 별돌색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점점 속도를 줄여 멈춘다. 증기 기차 토마스를 만나러 가볼까. 기차에 오르는 길, 가을비는 그치고 갈색으로 마른 단풍잎이 바람에 흩날린다.


기관사가 훤히 보이는 기관차 뒤로 아홉 개 객차가 줄줄이 꼬리를 이어 멈췄다. 배정된 두 번째 칸에 성큼성큼 올랐다. 지하철처럼 양옆으로 의자가 길게 뻗어 있다. 절반 위의 공간은 승객이 바깥으로 몸을 내밀수 있게 모두 뚫려 있다. 돌돌 말아 올린 초록색 비닐은 눈과 비를 대비한 가리개인가 보다.


파란색 멜빵바지 작업복을 입은 기관사는 챙이 달린 하늘색 빵떡모자를 썼다. 출발 위한 준비로 바쁘게 오르내리면서도 관광객들의 요청에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어준다. 개찰구에 서서 표를 확인한 흰 수염 할아버지는 자원봉사자 목걸이를 목에 걸고 무전기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손님들 향해 활짝 웃는다.


창밖으로 발을 내걸고 앉을 수 있도록 긴 봉이 연결되어 있다. 다리를 걸어 밖으로 내민 이들의 신난 발 동작을 보며 웃음이 난다. 과연 봉에 매달려 앉는 저 자세를 따라 할 수 있을까. 오른편에 앉으면 바깥 풍경을 멋지게 볼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대로 오른쪽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앞에서 화재가 일어난 듯 회색 연기를 가득 뿜으면서 미세한 석탄재가 흩날린다. 기관차는 덜컹거리며 움직이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속도를 낸다.


양옆 창가에 앉은 이들은 다리를 걸쳐 밖을 향해 앉았다. 조심스럽게 나도 창틀에 앉아본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초록으로 우거진 나무들이 뻗은 발끝에 닿을 듯 말 듯 빠르게 지나친다. 하얀 운동화 신은 두 다리를 흔들어 보았다. 양쪽 겨드랑에 손잡이 기둥을 바짝 붙이고 두 팔을 펼쳐 손가락을 활짝 열었다. 초록 바람이 손가락 사이로 세차게 흐른다.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기관차 아홉 개는 둥글게 흐르면서 옆모습을 보여준다. 뒤로 보이는 칸마다 모두 두 다리를 뻗어 흔들고 있다. 핸드폰을 들어 영상을 찍는 사람들, 환호하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 놀이 기구를 타는 어린아이들처럼 신난 얼굴로 두 다리를 흔든다. 나도 따라 조심스럽게 두 다리를 흔들어 보고 소리를 지른다. 한 마음으로 동시에 소리를 내고 몸을 흔들어야 흥이 더해지나 보다. 기차 속도가 높여지면서 신나는 기분도 높아진다.


숲을 지나 마을이 보이자 길을 걷던 주민들이 멈춰 서서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준다. 반가움에 너도나도 손을 들어 힘껏 답한다. 해발 700미터 되는 산속 마을 고요한 풍광에 잠시 숨을 멈춘다. 끝없이 푸른 잔디로 이어진 언덕, 키 큰 나무로 무성한 숲, 나무로 엮어진 오래되어 보이는 다리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한가한 시골 마을. 멜버른 외곽에 증기기관차가 다녔던 오래된 과거를 여행한다.




옆에 있던 남편이 갑자기 배낭에서 하얀 마스크를 꺼내 쓰더니 내게도 권한다. 메케한 냄새와 한두 점씩 얼굴로 떨어지는 석탄가루를 피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둘이 마주 보고 웃었다. 낭만을 딱 멈추는 순간. 둘이만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와 버린 순간이다.

'그래, 우리 둘은 오래오래 살자 여보.'

먼 나라에서 온 우리 둘은 한마음을 이렇게도 연습한다.


벨그레이브 역에 다다르자, 밖에서 기다리던 가이드가 영상을 찍기 시작한다. 마스크를 얼른 벗어내고 두 손과 발을 힘껏 흔든다. 여전히 동화 같은 기차마을 동심을 누리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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