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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Sep 08. 2021

중년 부부의 여행은 의외로 즐겁다

중년 부부의 여행이 좋은 제주

남편이 입국하면서 2주간의 자가 격리 마쳤다.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건강검진도 빠뜨리지 않았다. 주어진 한 달의 휴가기간 동안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는 매번 빼곡한 스케줄 표를 만들어온다. 그리고는 하나씩 체크하며 모든 일들을 마무리하고 간다. 그중에는 우리의 2박 3일 여행도 포함된다.


그가 해외로 파견을 나간 지 1년 반... 6개월 후에는 철수할 상황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3개월에 한 번씩 빠지지 않고 귀국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지만 매번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쉴 수 있도록 둘만의 여행을 떠났다. 서울, 경주, 가평, 제주... 그중에서도 제주를 자주 선택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부산에 살면서도 바다를 좋아하는 내게 제주는 가깝고도 이국적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중년의 여행은 의외로 손발이 잘 맞는다.

2박 3일의 여행을 위해 우리는 각각의 캐리어를 준비한다. 그리고 본인의 취향대로 가방을 꾸린다. 그는 자신의 종류별 영양제들과 간단한 옷가지들을 채운다. 그리고 책 한 권을 가방에 추가한다.  캐리어의외로 챙길게 많다. 화장품, 예쁜 원피스들, 운동복 한 벌과 운동화 그리고 책 두 권을 담는다. 절반은 비어있는 그의 캐리어 공간에 나의 짐들을 슬쩍 얹는다. 여성들은 화장품만 해도 클렌징과 헤어용품까지 포함하면 가짓수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의 영양제에 토를 달지 않고 그 나의 잡동사니에 잔소리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나친 간섭을 포기한 중년이니까 하하


제주행 비행기를 예약하면서 우리는 들어갈 때 오전 8시 이전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때는 오후 4시 이후의 것을 용한다. 렇게 하면 3일을 온전히 여행하며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

떠나는 날 아침 6시 반에 출발해서 공항을 가는 버스를 탔더니 문제가 생겼다. 출근 시간과 겹쳐 길이 막힌다. 지난번 여행에는 7시 반 비행기를 타느라 더 일찍 출발했었고 아이들과 함께 할 때는 자가로 운전해 가서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7시 반까지 공항에 도착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버스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시간을 잘못 계산해 곤란해진 상황이 남편에게 미안해질 무렵이었다. 남편은 버스 안에서 예약시간을 변경했다. 30분을 늦춰서 8시 반으로 조정해 다행히 시간에 맞춰 탑승할 수 있었다. 몇 년 전이었으면 서로를 탓했을 텐데 이제는 그냥 조용히 다음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애쓸 뿐이다. 아마도 세 자녀의 사춘기에 함께 작전을 짜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면서 연습된 노하우인 것 같다.



제주의 아침과 저녁을 달리고 걷는 우리 부부...



중년의 여행은 시간을 여유 있게 사용할 수 있어 좋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보여주고 체험시키고 싶은 것이 많아 스케줄에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이제는 여행의 방향과 간단한 목적지만 결정한 후, 쉬고 싶은 곳에서 쉬고 달리고 싶은 곳에서는 스케줄을 진행시킨다. 이번 제주 여행은 서쪽 해안과 남쪽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우도를 계획에 포함시켰지만 숙소와의 거리, 일기와 컨디션을 고려해 일정을 변경했다.  대신 우리는 올레 9길과 동문시장 그리고 애월 해안 산책길을 선택했다. 늦은 저녁 애월의 해안도로를 따라 왕복 두 시간을 걸었다. 한치잡이 어선들의 일렬로 늘어 선 불빛들은 카페의 야간 전구처럼 수평선에 낭만적으로 걸려있었다. 오가는 내내 두 손을 꼭 잡고 많은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마지막 날에는 오후 3시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음에도 아침 바닷가 산책 후,  해안도로의 해바라기 밭 그리고  통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선택했다. 1시간이 넘도록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빈백에 누워 잠든 그를 멀리서 사진 찍으며 웃을 수 있었다.



수평선에 늘어 선 한치잡이 배들...



중년의 여행은 건강을 생각한다.

아침마다 서로의 영양제와 물을 챙기고 몸에 좋은 음식들로 섭취하려 한다. 매번 제주를 여행할 때면 제주의 과일을 사서 차에 싣고서 즐기며 움직인다. 이번에도 동문시장에서 이른 귤과 황금향을 사서 여행 내내 맛있게 먹었다. 제주의 딱새우 김밥, 갈치구이, 우럭찜, 흑돼지구이 등 비싸지 않게 지역주민 맛집을 찾아 과식하지 않는다.


살아온 세월이 25년 되어가는 우리는 크게 싸울 일이 없다. 초반에 많이 싸워보고 서로를 알아왔기에 이제는 부딪 일을 부러 만들지 않는다. 만약 싸우려고만 했다면 여행 중에도 여러 차례 큰 싸움이 났을지도 모른다. 출발 전 비행기 시간뿐만 아니라 일정 중에도 메뉴와 여행 코스에도 대립할 일들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의 의견을 우선순위에 두려 서로 고, 상대의 선택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서 끝까지 웃을 수 있었다. 일상을 여행처럼만 살면 싸울 일이 없겠네~~^^

그러고 보니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고 남편을 뒤따랐던 올레 길이 생각난다, 잠시 동안 기암절벽인 박수기정을 구경하는 산책길인 줄만 알았다가 두 시간 동안 산과 언덕을 오르내렸다. 정말 마음이 크게 상할 뻔했다. 콜택시를 불러 하산 길을 줄여주는 타협점 때문에 우리는 손을 잡고 내려올 수 있었다. 새로운 길 탐험하기를 즐겨하는 그의 취향을 가끔은 존중하려 한다. 만약 알았으면 따라가지 않았을 텐데... 하하



노년에도 여행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맞추어가는 중이다. 그때도 즐겁다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제주의 동굴과 고사리...


노을리 해바라기...
박수기정...
올레 9길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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