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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Oct 12. 2021

거울 속에는 중년이라는 깊어진 가을이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젊음 그리고 지금의 나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 동공이 확장되었다. 생기 없는 눈빛에 꾹 다문 입술은 불만이 가득한 어느 누군가의 모습 같다. 부러 눈꼬리를 올리고 입술을 벌려서 미소를 지어본다. 둥근 이마는 신경 써서 좌우로 주름을 펼친다. 그런 후, 허리를 곧추 세우고 어깨를 쫙 펼쳤다. 몇 년 전 찍었던 핸드폰 속의 사진들을 열어보았다. 사진이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자연스러운 미소와 날렵한 턱 선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옷장 속에 허리를 조이는 옷들은 손을 댄 지 오래다. 통이 좁은 어깨와 소매는 불편해서 외면하고 편한 원피스를 자꾸만 꺼내 입게 된다. 다림질이 필요 없는 옷에 먼저 손이 간다. 제일 좋은 위치에 보관해 둔 7센티 힐들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신장에 갇혀있다. 플랫슈즈와 운동화를 즐겨 신게 된 후로는 굽이 있는 신발을 신고 외출하는 일들이 두려워진다. 몇 번이고 거울 앞에 힐을 신고 걸어보다가 다시 들여보낸다.

 


우연히 아이들과 결혼관에 대한 이야기 나누게 되었다. 대화중에 엄마는 보수적이라는 아이들의 농담 섞인 진담을 들은 후로는 자녀들에게 조언하는 일도 두려워졌다. 긴 잔소리와 훈계만 하려는 꼰대가 될까 싶어 가끔씩 의식적으로 입을 다문다. 그저 기회가 되면 카카오톡으로 아이스크림과 커피 쿠폰을 보내며 사랑을 전달한다.


 

진정 내가 원하는 멋진 중년의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역주행으로 더 젊어지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젊은이들과 동일한 사고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역동적인 활동과 열정을 불태우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아이크림과 보습크림을 바르며 노화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일에도 성실하다. 흰머리를 규칙적으로 가리고 옷을 구입하는 매장도 오히려 2,30대의 브랜드를 먼저 방문해서 살펴본다. 혹시나 사고가 노화될까 싶어 책 읽기를 계속하고 아이들의 말을 못 알아먹을까 싶어 인터넷 속의 프로그램들과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검색해 보기도 한다.


 

지금 나는 중년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거나 싫지 않다. 오히려 내게는 세월을 살아낸 훈장으로 여겨진다. 봄, 여름을 지내고 붉게 물들이는 가을이 내게 온 것을 환영한다. 열매를 거두고 나면 낙엽으로 떨어지는 시기를 자연의 섭리와 흐르는 물처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렇게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1년 전부터 외국인 대학생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되었다. 대학생과 대학원생인 그네들의 모임을 돕고 한국어를 보조하면서 신나고 즐겁다. 선생님, 언니라는 외국인들이 불러주는 호칭이 반갑고 친근하다. 한국의 문화를 동경해서 이곳까지 오게 된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열정을 응원하게 되었다. 젊은이들과 어우러짐이 익숙해질 즈음 몇몇 한국 대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을 주 1회 돕고 격려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딸아이의 말처럼 오지랖을 확장시키거나 과한 관심을 펼치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다.



귀를 열어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 그리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며 다독이는 말은 2,30년은 먼저 살아온 우리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친구관계, 부모님과의 어려움을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건네준 한 마디로 도움을 얻는 아이들을 볼 때면 행복감이 몽글거린다. 옆에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는 그들의 한 마디가 감사함으로 남는다. 내게 중년이라는 시기가 도래했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가끔은 일부러 열정을 어올려야 하고, 가을 아침의 안개처럼 허무함이 엄습하기도 한다. 푸른 청춘이 너무나 아름다워 때로는 흰머리와 주름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도 차분하고 여유 있는 미소와 잠잠한 마음을 누릴 수 있는 지금의 중년이 나는 좋다.



모든 것들이 떨어져 흩어지는 가을이 아니라 추운 겨울에도 따뜻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날들이기도 하다. 순발력보다는 성실함으로, 빠름보다는 깊음으로 다른 차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거울 앞에 선 나의 중년이 미워서 숨으려 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단풍 같고 멋있는 낙엽 같은 중년이 그리워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다시 마주한다.




이 가을,

나를 사랑하고 온전히 누리는 풍성한 중년이라고 나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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