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소풍을 갈 때마다 보물을 찾아들고서 환호를 지르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다. 고개를 뻗어 나무 가지마다 위를 살펴보고 온통 잔디를 발로 쓸어 보아도 내 눈에는 안 보이던데... 눈에 보이는 돌멩이마저도 몽땅 뒤집어 보고 나뭇가지를 들고서 휘저어 보아도 선생님들이 작게 접어 숨겨 놓으신 쪽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축 처진 어깨가 애처로워 보였는지 담임 선생님께서 지나가시며 눈빛으로 뭔가를 알려주셨다. 옆에 있던 순발력이 뛰어난 친구는 눈빛이 가리킨 곳에서 보물을 금세 집어 올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보물을 잘도 주워 올리는 친구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거나 여러 개를 손에 쥔 친구에게 나눠달라 손을 내밀었으면 좋았겠다. 자존심이 강하고 융통성도 없었던 나는 그저 보물이 내 손에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지금까지도 우연히 내게 작은 선물이라도 당첨되는 일은 없다. 내 인생에 공짜란 없나 보다. 하하
보물이 내게 오지 않는다면 내가 만들면 된다.
가을날은 여기저기서 보물 찾을 곳들이 참 많다.
나는 매일같이 보물을 찾아내며 살아가고 있다.
산들산들 바람이 창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집에 가만히 머물 수 없어 잠시 집 앞 천변을 걷는다. 오르막 계단에 흩뿌려진 낙엽들은 가을이 왔다고 새로운 소식들을 알려준다. 조용히 흘러가는 시냇물, 바람에 흔들리는 무성한 잡초의 움직임에도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조용히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이는 노인들의 건강한 모습과 아기를 달래는 엄마의 모습에서도 미소를 줍는다. 가을바람을 따라 양손을 앞뒤로 흔들며 흥겹게 걸으면 복잡한 마음들이 말끔히 정리되기도 한다. 매일 걷는 길에서도 새롭게 다가오는 신기함과 깨달음이 놀랍다.
가족들이 외출하고 나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서 햇살이 들어오는 테라스로 향한다. 여름이 지나면서 긴 테이블과 등이 깊은 의자를 테라스로 꺼냈다. 뜨거운 여름날과 추운 겨울날에는 누릴 수 없는 햇살 맛집을 가을날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이곳에 앉아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린다. 창에 드리운 레이스 커튼과 푸르른 식물들은 나만의 보물섬을 멋지게 꾸며준다. 넓은 접시 가득 음식들을 담고서 테라스로 향하는 소풍은 지척이라서 더욱 신이 난다.
하늘이 맑은 가을날에는 운전해서 근처 바다로 향한다. 트렁크에서 비치의자를 꺼내 어깨에 메고서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쓴다. 신발은 벗어 손에 들고 모래사장 위를 한 발씩 힘주어 가며 걷는다. 바다가 코앞에 보이는 고운 모래 위에 의자를 펼치고 털썩 앉아 본다. 파도치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어제의 후회를 정리하고 새로운 꿈과 계획도 결심한다.
따뜻한 가을 햇살에 책을 펼쳐 들고 있다 보면 가끔씩 해변을 걷는 관광객들은 부러운 눈길을 보낸다. 이런 낭만은 그냥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보면 멋지게 파도 위로 미끄러져가는 서퍼들도 보이고 종종 거리며 걷는 갈매기도 보인다. 그림 같은 보물들이 내게 오지 않는다 해도 이렇게 기어이 찾아내어 내 것으로 만들면 된다.
바다로 떠나는 가을소풍...
젊은이들의 바닷가 피크닉 낭만도 만들면 되는 것이다. 가끔 남편의 퇴근 시간에 해변에서 의자를 펴고 간단 도시락을 사서 해변의 저녁을 나누기도 했다. 엄마 아빠의 사진을 보며 부러워하는 딸아이에게 가을 피크닉에 초대했던 날이 기억난다. 피자와 치킨을 포장하고 접이 테이블을 차에 실어 바닷가에서 펼쳤던 지난가을 소풍이 즐거웠다. 가을날 석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붉고 아름다워 멋진 소풍이 된다. 보물로 남은 추억의 사진들은 시간이 지나가도 행복하게 한다.
우리들의 가을소풍...
때로는 책 한 권을 들고서 카페로 소풍을 떠난다. 흐트러진 일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집안일을 잊고서 짧은 글을 쓰고 싶을 때 떠나는 카페로의 소풍은 보물을 찾기 좋은 곳이다. 바다가 보여도 좋고 계곡과 산이 보이는 곳도 좋다. 집 앞 초록 식물로 가득한 작은 카페에 들어가 예쁜 라탄 의자에 앉아 있다 보면 좋은 글감도 정리되고 책이 잘 읽힌다. 책 읽기 좋은 조용한 카페 목록들은 내게 소중한 보물 목록들이다.
마음껏 책을 펼치고 빌릴 수 있는 도서관, 신간 서적과 시대 흐름을 보게 하는 서점에 가는 일도 즐겁다. 숲이 우거진 가을 산으로, 꽃이 가득한 화훼시장으로 가을 소풍을 떠나본다. 아직도 가봐야 할 곳들과 가을의 충분한 시간들이 남아있어 참 다행이다. 혼자 그리고 같이 어디로든 가을소풍을 떠나보자.
나는 오늘도 가을비가 내리는 우산 너머 나뭇가지 위를, 천변가를 눈길로 쓸어보며 보물 찾기를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