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게 전화를 걸었던 남편은 힘없는 나의 목소리에 이미 기가 죽었다. 시아버님 때문이 아니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시댁일로 미안한 마음을 갖는 남편의 태도를 그냥 두고 싶었다. ‘이런, 나쁜...’
우리 부부의 태도가 동등한 입장이 된 것은 6년 전, 시부모님이 아프신 이후다. 당시 반년 간의 부부싸움과 냉전은 끝없이 지속될 것만 같았다. 낙상으로 입원하신 아버지는 반신이 신경 마비로 무척 예민하셨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고에도 김장을 강행하시던 어머니조차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각각 다른 병원에 입원하신 두 분을 방문하고 돕느라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시골 장남이면서 효자인 남편은 나보다 한층 더 세심했다.
그는 모든 면에 꼼꼼하고 계획적이다. 상당히 이성적이며 계산도 빠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요양사를 각각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력이 필요할 때면, 거침없이 모든 일을 해냈다. 그래서... 내가 애쓰는 섬김들을 당연히 여기는 듯했다.
“요양사를 안 쓰고 당신이 하면 안 될까?”
그는 불평이나 거친 말을 내뱉지는 않지만 가끔 화가 나면 입을 다물었다. 최선을 다 하고 있는데도 만족하지 않고 고마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칭찬받고 인정을 원하는 마음은 아이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애씀에 만족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불만과 미움은 계속 쌓여갔다. 시부모님의 보호자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그에게 솔직한 나의 마음을 차마 표현할 수는 없었다. 입 밖으로 꺼내는 것도 노동처럼 귀찮은 것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했다.
섭섭함에 앙갚음을 하고 싶어 안달이던 나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와 함께 마주 앉는 것도, 다정하게 얘기하는 것도 의식적으로 멈췄다. 무언의 시위대처럼 두 귀를 막고, 눈동자는 냉정하게 비켜가면서 입술은 힘주어 꼭 붙여 두었다. 시부모님이 병원에 입원하시는 동안 나 혼자만의 냉전을 그렇게 시작했다.
결혼 생활 내내 잉꼬부부로 누구든 닮고 싶다는 칭찬을 듣는 우리였다. 세 아이들이 보기에도 우리는 가정에서 큰소리 내어 싸운 적 없는 모범적인 부부였다. 우리만큼은 싸울 일 없이 노년까지도 갈 수 있는 사랑 많은 커플이라고 깊은 자부심을 안고 있었다.
남편을 향한 미움이 커져서,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게 되자 자꾸만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잦은 다툼으로 부부관계를 힘들어하던 30대 동생이 내게 상담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내 나름대로의 경험과 지혜로 조언했던 일이 생각나 얼굴과 뒷목이 뜨거워졌다. ‘아이고!’ 긴 한숨을 내뱉으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당시 ‘이렇게 해라!’ 고 정답처럼 말한 어투는 아니었는지 기억을 되돌려 보았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단정 짓거나 상담해주려 들지 말자고 몇 번이고 마음에 새겼다.
우리가 다시 따뜻해지기까지는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간호사인 막내 동생이 시부모님께 도움을 드리면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해 주었다. 딸아이는 나의 입장을 잘 풀어서 같은 여성의 말로 남편에게 전달해 주었다. 답답하고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에 마음은 아팠지만 시댁으로 인한 상처와 남편의 태도로 실망한 내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계속적인 남편의 대화 시도에 조금씩 응하면서 서로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게 되었다. 다시 싸움이 일어날지라도 끝없이 대화하고 감정을 말로 설명하여 전달했다. 때로는 감정에 사로잡혀 유치하게 표현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시기를 통해 중년의 우리 부부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우리 두 사람의 관계를 부모와 자녀보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함을 인식하고 함께 애쓰게 되었다. 나 스스로는 시부모님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는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며느리의 위치는 지키면서 섬기되 무례함과 거친 태도에 대해서는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나를 위해 남편도 여러모로 노력했다. 나를 향한 아버지의 불만을 전달하지 않았다. 시댁의 요청에 대해서는 혈연으로 맺어진 삼 남매와 협의하고 해결했다. 스스로 해결할 일에 대해서는 내게 전달만 할 뿐 시댁 일에 본인이 직접 나섰다. 시부모님의 병원 관련 일에는 내게만 맡겨두지 않고 휴가를 내어 자주 동행해 주었다.
50대 부부가 되면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서로를 잘 파악하고 있지만 말과 태도에 예의를 갖추려 한다. 그리고 각각의 영역은 침범하지 않고 존중하려 한다. 자녀들을 독립시키고 남은 생을 둘이서도 잘 살아가기 위해 두 번째 삶을 준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