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걱정 없어 보인다고요?

인생의 파도들...

by Jina가다

40대 초반의 동생이 저에게 말하더라고요.

“언니는 너무나 편안해 보여요. 애들이 다 커서 이젠 아무 걱정도 없지요?”


“많이 편해졌지. 그런데 집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고민들이 있을 거야. 겉보기에는 부럽고 좋아 보이는 집들도... 그 시기에 맞는 어려움들은 누구나 겪는 것 같아. 나는 너보다 좀 더 빨리 지나왔을 뿐이고...”


함께 모였던 50대 언니들도 앞 다투어 자신들의 얘기를 꺼냈습니다. 1월이면 큰 아들을 결혼시키는 언니도 있었고, 어려워진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또래 아들을 둔 언니도 함께였어요. 다들 재미있게 말하는 분들이라 저는 주로 맞장구를 치며 들었어요 하하. 누구나 어려움을 잘 겪어낸 것은 큰 훈장이니까요.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걱정되는 어려움들은 여전히 많아요. 하지만 이제는 흐르는 대로 상황들을 인정하고, 덜 걱정하는 베짱이 생긴 것 같아요.

사실, 어제 남편과 얘기하면서도 여전히 걱정할 것들은 많았어요. 얘기하다 보면 좋은 일보다는 염려되는 일들을 더 말하게 됩니다. 남편의 발령지와 막내아들의 진로, 타국에 있는 딸아이의 건강과 안전, 내년 이사와 이율 상승, 시부모님의 건강과 시동생 가정의 어려운 해외사업 등등...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침투하는 염려들은 어쩔 수가 없지요. 그럴 때면 저는 먼저 기도하며 근심을 잠재운답니다. 남편과 고민들을 나누면서도 많이 해결하는 편입니다. 든든한 동지가 있어 참 다행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닌데, 세 아이들의 사춘기를 겪으며 같은 편이 된 후로는 아주 끈끈한 동무가 되었습니다.

2.30대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육아와 가사 그리고 부부관계에도 적응해야 합니다. 4.50대에는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학부모로서 겪어야 하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지요. 연로해져 가는 부모님을 신경 써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5.60대가 되면 자녀들의 독립과 결혼을 도와야 하는 과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아프신 부모님을 어떻게든 돌봐야 하는 부담도 갖게 됩니다. 물론 결혼 전부터 시작되었던 재정 문제는 끝까지 지속되겠지요. 예외의 경우들도 많겠지만, 제 주변에서는 이런 순서들을 다채로운 모습으로 겪어내더라고요.


해변에 서있다 보면 잔잔한 물결이 일다가도 좀 더 큰 물결이 밀려와요. 궂은날이면 바닷속 모래를 뒤집는 듯한 큰 파도가 일기도 하고요. 인생의 중반을 걷는 제게도 다양한 파도가 지나쳐 가더군요.



잔잔한 물결이라면... 서로 다른 인생을 살다가 결혼한 남편과 만나서 모서리가 깎이는 과정에서였어요. 결혼 전에는 멋있게만 보이던 이성적이고 깔끔한 그의 성품이었는데 말이죠. 막상 결혼하고 보니 완벽주의 그에게 맞춰가면서 눈치를 보게 되는 저를 발견했지요. 세월이 제법 흐르면서 그는 좀 더 둥글어졌고 저는 좀 더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큰 파도라고 하면... 세 아이들의 사춘기 그리고 양가 부모님의 건강과 변화였습니다. 50대 언니가 오늘 사용했던 ‘지랄 총량의 법칙’이 문득 생각납니다. 자기 개성이 분명한 세 아이들 덕분에 그 총량의 법칙을 각각 2년씩은 다 채운 것 같아요. 대략 6년간은 많은 눈물과 기도로 뼈가 마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긴 터널을 지나온 지금은, 시기가 바로 그때였음을 감사합니다. 사춘기를 함께 보내면서 아파한 엄마들이 그래도 주변에 많았기 때문입니다.


두 아들과 나란히 단풍길을 걷는 모습을 본 40대 초반의 동생이 한 말대로 지금 저는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우리 부부를 가장 힘들게 했던 아들이 언젠가 말하더군요.

“어머니 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지금도 기다려 줘야 할 것들은 많답니다. 욕심과 기대를 버리고, 격려하며 기다리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애쓰고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일은 남편도 동참하고 있지요. 아이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할 때면 서로 주문처럼 얘기합니다.

“여보, 비워요. 그때를 생각하며 그저 감사합시다. 건강해서 감사하고, 좋은 관계로 지낼 수 있어 감사하지요.

욕심은... 버려요.”


또 하나의 큰 파도는 부모님들의 일이었습니다. 친정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이 힘겨웠고 시부모님의 사고와 건강문제도 오랫동안 힘들었습니다.


친정아버지의 부재로 여러 변화들이 있었지만 동생들을 포함한 세 부부의 협동으로 큰 파도를 잘 넘겼습니다. 시부모님의 수술과 입 퇴원 그리고 건강에 대한 부분도 시댁의 삼 남매 부부의 연합으로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형제간의 중요성을 크게 여기게 된 계기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려움을 통해 배우자와 관계는 더 좋아졌습니다. 수많은 파도를 함께 겪고 나면 나눌 얘기들이 많지요.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그 찐한 우정을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참 좋습니다.




앞으로도 큰 파도들을 몇 번이고 더 겪어야 하겠지만...


지나온 경험들이 있어 감사하고, 함께 할 찐 친구가 있어 든든합니다. 가끔은 친구로 끼어들려 하는 세 아이들이 있어 참 감사합니다. 그래서 조금은 편안해 보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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