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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뮬 Aug 25. 2021

시대의 비극을 담아내다

<돌아와 보는 밤>

    윤동주의 여러 시들을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고,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다. 나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계속해서 <서시>, <새로운 길>, <별 헤는 밤>과 같은 시들을 마주칠 텐데 지겹도록 봐왔음에도 때에 따라서, 성장한 만큼에 따라서 매번 새롭게 다가왔다. 하나의 시를 여러 번 보게 되면 누구나 질릴 법도 하겠지만, 매번 새로운 감정과 영감을 주는 윤동주의 시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돌아와 보는 밤>

                                                             -윤동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 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빗속애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나에게 꾸준히 기억에 남았던 시는 <돌아와 보는 밤>이었다. 이 시는 윤동주가 '부끄러움을 통한 자기 성찰'에서 벗어나 '세상에 대한 피로감, '조용한 분노'에 대해 썼다. 우리는 흔히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로 잠이 들면 화나고, 짜증 나고, 답답해한다. 불을 꺼야 하는 현실에 순응하기 싫지만, 이내 그러한 현실에 함께 흘러가는 나의 모습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싶어 진다. '낮의 연장'이라는 말,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라는 말, '사상이 능금처럼 익어간다'는 말에서 난 윤동주가 저항시인, 민족시인으로써의 운명을 받아들였음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에 씼겨내려 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돌아와 보는 밤>은 항상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윤동주의 시에 흔히 드러나는 '부끄러움'이라는 정서는 무엇을 상징할까? 단지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부끄러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이 부끄러움이 그 속에 분노와 욕망을 품고 있음을 느꼈다. 한계에 다다른 듯한 현실에 자기 성찰과 분노 섞인 부끄러움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시들이 그 증거가 된다.

    우리는 짧은 시 한 편을 통해 윤동주의 삶과 고통을 느끼며 감정들까지도 온전히 전달받을 수 있다. 시를 읽는다는 건 시인의 마음을 그리고 그 시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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