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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뮬 Dec 27. 2022

'미움'이라는 착각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을 원망해야 하나,

계속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건가,

사랑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쟁취할 수 있는 걸까,


사실 다른 사람들이 날 좋아하든 싫어하든 

사랑하든 경멸하든 상관없었다.

그런데 난 항상 해소되지 않는 욕구가 있었다.

항상 엄격하고, 단호했던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 했다. 


중학생 때였다.

내가 사춘기를 보내면서 힘들어하는 게 보였는지

엄마가 '걱정인형'을 만들어 주셨다. 

이제 와서 보니 걱정인형에는 입이 없었다.

걱정인형은 나의 걱정 보따리를

잘 들어주기만 하라고 엄마가 만든 존재니까

어쩌면 입이 없는 게 당연했다.


이제야

예전에 엄마가 이 걱정인형을 선물로 주면서

하셨던 말이 생각났다. 

"엄마가 항상 미안해. 다른 엄마들처럼 칭찬 많이 못해줘서.

네가 너무 소중해서 너무 기대가 높았나 봐. 

못난 엄마 대신 이 걱정인형이 너 걱정 다 들어줄 거야.

우리 딸 잘 자."


몇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난 내 손에 꼭 들어오는 그 걱정인형을 쥐고 잠을 청한다.

그걸 쥐기만 하면 걱정이 다 사라진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냥 조금 밉고 많이 좋다.

(사랑은 때론 너무 단순해서 어렵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는 존재는 '부모'이다.

그런데 부모도 사실 갓 태어나 첫걸음마를 하는 아이와 같다.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부모'라는 역할은 처음이다.

처음 배우는 언어처럼 어렵고 막막하고,

때론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다.

세상 강해 보이지만 그들은 '부모'라는 이름 뒤에 숨은 소녀와 소년들이다.

(적어도 내가 느낀 나의 부모님들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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