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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뮬 Apr 10. 2023

<냉이>

이 세상에 추락하고

셀 수 없이 버거웠던 잔인한 추억들과 

깊은 골짜기 속에 살던 고단함을 

산에 버리고 내려오는 길


낡은 벤치에 걸터앉아 조금 전에 뽑은 냉이를 주섬주섬 꺼내어 

입에 넣어본다, 씹어본다.

머지않아 내 입안이 흙의 흥취로 가득 차오른다


냉이의 잔뿌리들이 나를 연기처럼 휘어 감고

흙 속으로 날 이끌었다

난 바닥을 뚫고 흙 속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흙을 파고들어 뿌리를 내렸다

흙과 난 하나가 되었다

아릿한 정신을 쥐어 잡고

살며시 눈을 떴다


눈앞에는 또 다른 냉이가 있었는데 

그에게로 뿌리를 뻗자

그도 나에게 뿌리를 뻗었다

서로의 뿌리가 지독하게 엉켰고, 

그 주위에 더욱 진해져 가는 흙의 향기가

내 후각을 마비시켰다


부드럽고, 또 거칠고 

여리고, 그래서 더 아팠던 포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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