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등과 일등을 둔 엄마의 선택-1회

일본을 가지 않았다면 꼴등을 면했을까?

난 꼴등을 한 아이의 엄마였다. 일본을 가지 않았다면 꼴등을 면했을까?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가장 잘 났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은 작고한 고 김자옥씨도 늦게 태어난 아들을 보며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 아들은 천재라며 노래면 노래 공부면 공부 못하는게 없다고 , 특유의 수줍은 웃음을 웃어가며 자기 늦둥이 아들 자랑을 했었다.


일본만 가지 않았다면 우리 큰 아들은 꼴등을 면할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나에게도 그 아이에게도 의문이다.

큰 아이는 어렸을 때 비범했다. 감히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3살 전에 아파트 호수를 알아 놓고 그 집에 수시로 놀러를 가며 자기가 원하는 집은 무조건 찾아 가서 밥도 얻어 먹고 놀다가 혼자서 우리집을 찾아 오는 아이였다. 돌 전에 이미 뛰어 다니며 대소변도 한번만에 가리고 바로 어른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기도 했다. 이 정도면 비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가지는 레고나 퍼즐을 하면 끝을 보아야 일어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눈살미와 관찰력이 뛰어나서 레고며 퍼즐을 본인이 완성하지 않으면 어린아이가 일어나지 않고 심지어 화장실 가는 것도 참으며 끝까지 하는 아이였다. 개월수가 3개월이나 빠른 조카보다 매사에 영리하게 행동을 하여 주변에서도 똑똑하다 영특하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이 아이의 불행이 이렇게 시작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나 역시 은행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일본 주재원 발령을 받기 얼마전, 난 은행을 2개월 정도 앞두고 그만 둔 상태였다. 은행에 다니기 싫어 그만 두겠다고 할 때 조그만 더 다녀라고 말을 했든 남편이 갑자기 은행을 그만 두라고 했다. 알고 보니 남편에게는 계획이 있었든 것이다. 바로 일본 주재원 발령을 기다리고 있으며 결과 통보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난 대학을 졸업하기 전 이미 취업을 한 상태였으므로 놀아 본 적이 없었다. 일하는 동안에는 친정 어머니 집 옆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아이는 엄마가 키워주어서 일을 하는데 불편함 없이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 두고 집에 2개월 정도 쉰 후 바로 일본 주재원 발령이 난 것이다.

내 아이라도 아이와 함께 한 시간이 짧다 보니 아이 양육이 낯설기만 한데 이 아이와 나는 아무도 없는 일본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KakaoTalk_20220331_115511931_02.jpg 우리가 살던 일본 동네 조용하고 깨끗하다. 거리에는 휴지 휴나도 없을 정도

1991년 일본 주재원생활을 위해 일본 땅을 밟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발전 된 나라였다. 공항은 깨끗하고 사람들은 겉보기에 얼마나 친절한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조건 오하요 오자이마스, 스미마셍을 달고 있었다. 일본에 대한 첫 인상은 한 마디로 좋았다. 우리가 살 집 역시 얼마나 큰지 그 당시에 30평이 넘는 아파트였다. 이름은 노랑메이노하마 맨션으로 주변은 조용하고 동네는 술집하나 제대로 없는 아이들 키우기 좋고 치안도 잘 되어 있어 밤 중에 다녀도 위험하지가 않았다.

큰 아이는 일본생활에 적응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금방 일본 동네에서도 이 아이를 모르면 안 될 정도로 붙입성도 좋고 일본말도 잘했다. 그 당시 일본 유치원은 우리나라 나이로 36개월이 지나야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야했다. 우리가 가 일본에 간 시기가 1월이므로 이미 유치원 서류신청은 12월에 마감을 하였다고 한다. 유치원 입학을 원하면 2차 모집에 선착순으로 뽑는다고 새벽에 줄을 서보라고 한다. 마침 이 유치원은 일본에서도 이름이 있는 유치원이라는 말에 한국 부모의 극성으로 새벽 3시에 줄을 선 덕분에 유치원을 보낼 수 있었다. 참고로 일본 엄마들은 일을 할 경우만 국가가 모든 것을 지원해 주는 어린이 집을 보낼 수 있다. 유치원의 경우는 3년, 2년 1년으로 보낸다. 보통5세, 6세, 7세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일본 엄마들 사이에서도 좋은 유치원의 경쟁은 정말 치열한 편이었다.


이 아이의 일본 유치원 입성은 이렇게 힘들고 스릴이 있지만 그래도 통과하여 다닐 수 있었다. 아이는 눈도 부리부리하고 얼굴도 흰편이며 힘도세고 일본 아이들에 비해 키도 큰 편이었다. 엄마들은 국적 불문 다 동일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기의 아이들 보다 뛰어난 우리 아이를 좋아하고 나 까지도 좋게 받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 덕분에 이지매(엄마 왕따), 카오노 도리(새장에 갇히지 않았다) .

우리 아이는 눈치, 코치가 뛰어나서 한번 보면 제법 흉내를 내는 편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히라가나, 가타가나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 아이는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5살에 깨우치고 말았다. 일본 동화책을 혼자서 읽기 시작했다. 오히려 나에게 일본 글짜를 가르쳐 주기도 하여 난 아이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6년 이상을 일본에서 살게 된 아이의 일본생활은 행복했을까? 처음에는 아이도 힘들었다고 말한다.


우리 가족은 3년전에 가족여행을 일본으로 다녀왔다.

아이들이 자기를 조센징이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한국에 돌아오니 자기를 보고 쪽발이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그 이야기를 34살이 된 지금에야 하다니 마음이 아팠다.

꼴등 아이가 이렇게 말을 한다. 이제야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다고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란 말인가? 초, 중, 고 너무 힘들었다. 난 왜 꼴등 인생이지. . . . 일본에 오지 않고 한국에서 자랐으면 자기도 동생처럼 공부를 잘 하지 않았을까? 한번씩 꿈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일본생활의 가장 행복했던

6년6개월의 그 시간으로 되돌리고 싶다고 했다. <2회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