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자가 읽지 못하는 일본어 원서를 사는 이유
지인을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원래 책을 살 마음은 없었다. 그저 광화문까지 갔으니 교보문고를 들러야할 것 같은 생각에 들어간 것이었다. 나는 일단 소유하게 된 책은 번번이 완독에 실패하기 때문에, 완독할 것이 확실시 되는 이유(독서모임 등)가 없는 한 도서구매를 꺼리는 편이다. 책을 사 두고 읽지 않으면 1) 계획을 끝까지 이행하지 못한 점, 2) 헛돈을 썼다는 점을 책장에 반듯하게 꽂힌 책이 매일 상기시켜주므로 속상하다. 가능한 빌려보는 게 마음 편하다. 그래도 견물생심이라고, 구경하다보니 사고 싶은 책들이 꽤 많이 보였다.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는 모두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며 사는 내게 필요한 책으로 보인다. 근데 영문 제목 <Everybody Lies>가 병기된 것을 보니, 원서가 영문인가본데 나중에 킨들로 읽는 게 좋지 않을까?
<혼자 있는 새벽 4시의 힘>은 평일 4시반에 일어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생산적으로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내가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캐주얼하게 잘 읽히는 책은 금세 읽고 다시 들춰보지 않을 것이 뻔한데, 실물로 가지고 있기보다는 빌려 읽는게 좋겠다. 또, 이 책은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내가 다 읽고 나서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도 어렵다(우리 모두 새벽 4시에 일어납시다!는 무리일테니).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퇴사 직후 도서관에서 누더기가 되다시피 한 걸 빌려 읽었더랬다. 책이 너무 좋아 몇날을 푹 빠져 읽고, 절반쯤 읽었을 때에는 12월 포르투와 리스본 여행을 예약해버렸다. 이런 책은 실물로 소장하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할 것 같다(생각해보니 비슷한 이유로 <상실의 시대> 한글본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한번도 읽지 않아 귀임을 준비하던 때 현지 팀원에게 주고 왔다). 벽돌같은 책을 왼 손에 들고 서점을 휘젓고 다닌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 신간 발매 때문인지 하루키 책이 많이 보이네. 지난주에 다음번 독서모임을 위해 신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사면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도 함께 샀지. 우리 집 서재의 한 켠이 하루키 섹션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읽지 못한 하루키 책들이 이렇게 많은데... 모두 빳빳한 새 책으로 읽으면 기분이 더 좋겠지.
그러다 불현듯,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하루키가 어떻게 그의 등단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처음부터 다시 쓰게 되었는지 언급한 부분이 떠오른다. 그는 첫 소설을 완성한 후, 초고를 읽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 영문으로 쓴 뒤 번역하는 방식을 시도해봤다고 했다. 그렇게 그가 원하는 문체가 만들어졌고, 그래서인지 누군가는 그의 소설을 번역체라고 (내가 짐작컨대 아마도 폄하하는 뉘앙스를 담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대목에서, 그렇다면 내 일본어 수준으로도 원서 읽기에 도전해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야심을 가졌었다.
뭔가에 홀린 듯 외국어 서적 코너로 발걸음을 옮긴다. 일본어는 영어에 비해 서적이 현저히 적은 것 같아보인다.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있을 것이다. 제목으로 찾아보려니 눈이 어지럽다. 히라가나는 건너뛰고 한자를 찾아보자. 촌상춘수(村上春樹). 서너 권쯤 있는 것 같다. 모리(森, 숲), 저거다. <노르웨이의 숲>. 상(上)과 하(下)로 나뉘어 총 두 권이다. 빛깔도, 촉감도, 무게도 마음에 쏙 든다. 비닐로 밀봉을 해두어 열어볼 수는 없지만 나는 이미 두 권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왜 이런 엉터리 소비를 했을까? 서점 쇼핑백은 환경보호를 위해서라기보다 돈이 아까워 마다하고서, 읽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책 두 권을 들고 지하철에 앉아 생각해본다. 마음이 소란스러워 집에서 나올 때 듣다 만 팟캐스트 <No Stupid Questions>도 듣고 싶지 않다.
오랜만에 만난 학교 선배와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그와 만나면 항상 해왔던대로, 그가 불편하지 않도록 좀 더 다정하고 밝은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물론 내가 7월에 퇴사했으며, 원대한 계획이나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은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무슨 계기가 있었느냐고 묻기에 일년쯤 전부터 쉬고 싶었다고, 트리거가 된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트리거가 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변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너무 긴 이야기를 요점만 간단히 하려니, 내 귀에도 그 따위가 어떻게 퇴사의 결심을 일으켰는지가 오히려 이상한 사건으로 들렸다.
유튜브와 브런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소를 지었지만 좀 피곤해보였다.
그는 나를 응원해주고 싶었을까? 나는 그에게 응원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오늘은 마지막 출근일, 2023년 7월 14일을 기준으로 67일째 되는 날이다. 내가 세웠던 가장 큰 목표는 건강해지기. 요가를 생활화하고 술을 마시지 않을 것. 명상을 배울 것. 책을 읽고 새로운 시도를 해볼 것.
내일부터는 새벽 4시에 일어나볼까 한다. 그리고 요가를 가기 전 글을 써야겠다. 또, <노르웨이의 숲> 원서를 조금씩 읽어야겠다. 그것이 내가 나를 응원하는 방법이다. 천천히 하다보면 언젠가 스르르 될 것이다. 이제까지 그렇게 이뤄 온 것들을 하나씩 기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