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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카 Stica Nov 13. 2023

태국바질의 미소

맛있고 평온한 도시

태국이 여행지로서 (내게) 매력적인 이유 첫번째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음식이 아닐까 한다.  사실 첫번째는 음식이다, 하고 말을 하기 전 잠시 망설여지는 이유는 음식과 사람의 조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선 음식의 맛. 팟타이(볶음면)와 뿌팟퐁커리(게 커리), 쏨땀(파파야 샐러드)과 같이 이미 한국에서 유명하고도 인기가 많은 태국음식의 맛이야 말해 무엇하겠나. 어느 노래가사에서처럼 '맵고 짜고 단거'를 고루 갖춘 요리들이 입맛을 자극한다. 특히, 현지의 노포나 주로 현지인을 상대로 하는 식당에서 먹는 태국음식은 한국의 태국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내 입맛에) 훨씬 풍미가 가득하고 맛의 조화가 좋다. 태국바질이나 생강을 양껏 곁들여 먹으면 자칫 무겁거나 뻔할 수 있는 맛이 한층 향긋하고 다채로워지는 것이다. 태국 꼬사무이나 끄라비와 같은 남쪽 도시에서는 커리에 생후추를 줄기째 넣어주는데, 이곳 치앙마이는 북부라 그런지 아직 생후추를 넣어주는 곳은 못 봤다. 대신 남쪽에서 많이 보지 못한 pea eggplant ('완두콩 가지'라고 불러야 하려나, 현지어로는 makhuea phuang이라고 한단다)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음식만으로는 내가 태국에서 느끼는 심적 평온함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음식이야 예부터 물자가 풍부한 지역이라면 어딜가나 특색있고 맛있다. 중국 광저우에서 2년 살 때도 음식만큼은 아쉬워본 적이 없으니. 당시 나는 '죽기 전 한 가지 음식만 계속 먹어야한다면 하가우(새우딤섬)를 고르겠다'고 말하고 다녔으며, '배만 부르고 살만 찌는' 탄수화물을 좋아하지 않던 내게, 생강채가 들어가 향긋하면서도 푹 끓여 푸근한 각종 죽이나 입안에서 가볍게 흐드러지는 창펀(肠粉), 저작감은 쫀득하지만 이내 녹아버리는 딤섬 피는 나를 만족스럽고도 균형잡힌 식사의 세계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평온할 수 있었나? 지하철에서만 겪은 격정적인 일들이 수두룩하다. 나를 밀치고 먼저 내리려는 사람 때문에 신고 있던 단화 한쪽이 벗겨진 적, 에어팟 한 쪽이 떨어져 레일로 빠져버린 적이 있고, 내가 본인 여자친구를 밀쳤다고 생각한 어떤 청년이 나를 때리다시피 힘껏 민 일도 있었다.


물론, 비교가 타당하지 않다고 보여질 수 있다. 어쨌거나 지하철이라는 배경이 갖는 각종 상황을 고려하고, 장기 생활자로서의 입장과 그저 여행객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또, 광저우의 인구밀도와 치앙마이의 인구밀도는 큰 차이가 난다. 하지만 나는 방콕의 만원 지하철이나 버스를 꽤 타보았어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없다. 그리고 올 초여름, 튀르키예 안탈리아, 운신이 힘겨운 수준으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던 만원버스에서 본 광경도 이야기하고 싶다. 에어컨을 틀지 않은 상태로 창문도 제대로 열지 않아 바깥보다도 더욱 후덥지근한 버스였다. 그런 만원버스를 거의 열 번은 타고 다녔는데, 승객 모두가 장년층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긴 탈색모를 뒤로 묶고 스타일리시한 애슬레져룩을 입은 아가씨나, 이마가 벗겨지고 가방이 꽤 무거워 보이는 아저씨나, 누구도 귀찮아하거나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종교의 역할일까? 언젠가 절친한 브루나이 친구와 태국인들의 평온함(과 그 전염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다. 그녀가 주변의 가까운 태국인들과의 속 깊은 대화를 통해 추론한 것은 불교의 교리와 그에 대한 신앙심에서 우러나오는 언행의 특질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불교문화 도시,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도시 전체가 자아내던 분위기와 사람들을 기억해보면 수긍이 가는 추론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음식 맛이 좋은 노포라고 하더라도, 현지어를 할 줄 모르는 주제에 돈을 더 많이 내는 것도 아닌 외국인들에 대한 저항감이 느껴진다면 식사가 즐거울 리 없다. 그러나 까무잡잡한 현지 소년들 예닐곱명 무리의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그들이 지불하는 것과 같은 가격을 내고 맛보는 음식이 더 맛있는 이유는, 머리는 회색빛으로 세었지만 반영구 아이라인은 여전히 새카만 주인할머니의 자연스러운 미소와 친절 때문일 것이다.  



[아래는 그 중에서도 맛있게 먹었던 식사들의 사진. 늘 먹기 바빠 대부분 사진은 도중에 찍게 된다.]


쌀국수 30 THB, 카오소이와 튀긴돼지고기 볶음은 가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도합 150밧 수준, 한화 5천원대.   - 식당: ป้าแดง ขนมเ (님만해민 위치)




생선튀김, 메기커리, 치킨커리, 파파야 스프 (놀랍게도 김치찜맛), 돼지고기볶음. 모두 250 THB (한화 9천원대)   - 식당: ปักษ์ใต้พัทลุง (치앙마이대학 부근
일요야시장에서 줄서서 사먹은 전통 소시지. 녹두당면과 찹쌀이 들어있다. 25 THB (한화 9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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