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좋은 회사, 사실은 퇴사하고 놀러온거예요
내가 치앙마이에 온지 사흘 되던 날, 남편이 왔다. 작년 가을에 치앙마이를 처음 와 보고 이 도시에 반했던 그였기 때문에 그를 유혹하기는 수월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는 인터넷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을 공동창업하여 운영하고 있어, 원격근무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지라,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와 준 것이다. 곧 그의 생일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나중에 추억이 될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가 불혹의 이정표를 이틀 앞둔 날, 시어머니에게서 카톡이 왔다. 시어머니, 남편과 나 삼인으로 구성된 단체카톡방. 우리집 주소를 어디다 적어뒀는데 못찾겠다며, (시어머니 아들 생일을 맞아) 고기를 보내려고 하니 알려달라고 하셨다. 나와 남편은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거짓말을 하면서 어머니의 기분도 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렸다. 시댁은 나의 퇴사 사실을 아직 모르신다. 퇴사로부터 사개월이 지났으니 이쯤 되면 퇴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라는 소극적 은폐라기보다는 이미 적극적인 기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안 그래도 손주를 기다리는 시부모님들로부터 비출산계획에 대한 명확한 승인을 받아두지 않은 채 가임연령에서 갈수록 멀어지는 데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데, 그나마 쓸만하던 직업마저 내팽개쳤습니다, 고 알리기는 도무지 두려운 것이다. 비출산도, 퇴사도, 나라는 개인적 특성상 (주로 장기적인, 정신) 건강을 유지하며 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에 앞서 결혼을 선택한 만큼, 중요한 사람들에게 미칠지 모르는 부정적 영향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한다. 따라서 당연히 치앙마이 한달살기와 같은 방종을 알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오분 내외 거리의 화이트톤 인테리어가 세련된 카페에 있었다. 남편은 진한 크림이 들어간 더티커피를, 나는 오트밀크를 넣은 말차라떼를 시켜두고 각자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가게에서 키우는 턱시도 고양이가 활달하게 손님들과 인사를 하며 돌아다니다, 우리 테이블에 정착해 잠을 자고 있는 중이었다.
우선은 어머니께 집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야한다. 애써 큰돈 들여 보내주시는 고기를 집 대문 앞에서 썩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 남편: 다음주에 집에 사람 없을 것 같은데
- 시모: 어디 가나?
이미 태국에 와 있고, 다음주까지 부부 둘이 여기 있을 것임을 말씀드리자, 자연스레 회사는 어쩌고 갔느냐고 물으셨다. 마침 남편이 일을 하고 있던 것이 다행이었다. (나도 영상편집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평소 순발력이 부족한 내가 떠올리지 못했을 거짓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둘 다 워케이션(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 - 원하는 곳에서 업무와 휴가를 하는 것)중인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ㅎㅎㅎ'와 '좋은 회사들 다니네 ㅎㅎㅎ'라고 하셨다. 한국이 이렇게까지 '좋은 나라'가 아니던 시절을 살아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카톡 대화는 어머니의 '일단 알겠어'로 끝이 났다.
돌이켜보면 내가 다니던 회사는 실제로 좋은 회사였다. 퇴사 의사를 전했을 때, 팀장은 반년 정도 휴직을 권했었다. 인사팀에서도 휴직은 왜 생각하지 않는지를 묻고, '회사가 무엇을 해주면 계속 다닐 수 있겠느냐'도 물었다. 만약 내가 워케이션을 하겠다고 했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줬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팀 업무가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던 반면, 회사 전체적으로 채용이 경색되어 있는 시점이었는지라 휴직자가 비운 자리를 메꿔줄 리는 만무했다. 휴직 후 100%의 마음가짐으로 복귀할 수 있으리란 자신이 없는 마당에 그런 폐까지 끼칠 수는 없었다. 또, 워케이션으로 원래 하던 일들과 접촉해야 하는 사람들을 안고서 치앙마이에 왔더라면 나의 부자유를 더욱 통절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 모든것이 어쨌거나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것.
퇴사를 한지 사개월이 지났지만, 놀라우리만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갑자기 내가 출간작가가 된다거나 전업 유튜버가 되어 여행을 하며 돈을 버는, 그런 꿈꾸던 일들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사실 퇴사가 가장 쉬운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피부양개체가 고양이 두마리뿐이어서 그랬던 것이지만). 배려심 깊은 사람들은 나의 퇴사가 '용기있는 선택'이라면서 없던 용기를 북돋아주려고들 하지만, 솔직히 나는, 하던 일을 매일 계속해내는 것이 더 큰 용기이자 자신감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당면한 현실을 앞으로도 건강하게 버텨낼 수 있다는 자신감.
중학교 졸업까지 살던 고향 집의 거실 베란다 창문은 불투명한 유리였다. 겨울 아침, 얼핏 보면 밖에 하얀 눈이 내려있는 것처럼 보일때가 많았다. 그 불투명한 유리가 유난히 하얗게 보이는 날이면, 오늘은 눈이 내렸나, 하고 가까이 다가가 창밖을 내다보고는 했다. 눈을 유달리 좋아했다기보다, 눈이라는 것이 매일 내리지 않기 때문에 (눈이 내린) 오늘은 어제와 다른 특별한 날이기를 바라는게 내 천성이라 그랬으리라.
남편의 불혹을 바짝 뒤쫓아가는 나이가 되어보니, 나도 조금씩 알 것도 같다. 하늘에서 선녀님들이 눈송이를 뿌려주기를 기다려 특별한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내가 그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더 믿을만한 투자라는 것. 또,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일상과 (여전히) 특별하지 않은 나를 애정어린 품으로 하루하루 안아내는 일이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
어머니, 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 대신에 어머니 아들이랑 더 튼튼하고 행복하게 잘 살게요. 곧 생신 선물로 핸드폰 사드리려고 제가 백수 통장을 털었는데, 그런걸론 효도에 턱없이 부족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