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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카 Stica Nov 17. 2023

치앙마이 선데이 마켓, 꼭 가야할까요?

사원 마당에서 소시지를 사먹고, 차 없는 대로에서 코끼리바지 쇼핑을

치앙마이행으로부터 한 주가 채 남지 않았을 때, 오랜만에 첫 직장의 선배를 만났다. 내가 어느 이자카야에서 공짜 안주를 얻기 위해 올린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고, 그녀가 '한국이예요?????' 하는 댓글을 단 것이다. 내가 주재원 조기귀임을 한 지 일년이 훌쩍 넘었고, 퇴사를 한지는 삼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수년만에 만난 그녀는 여전했다. 가끔 푼수같을만큼 솔직하고(그래서 선배이지만 귀엽고), 나와 비슷하게 해보고 싶은 것과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은 사람.  


그녀도 연말의 태국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엿새 남짓한 일정을 방콕과 치앙마이로 쪼개다보니 일요일을 치앙마이에서 보내는 것이 여의치 않다며, 치앙마이의 선데이 나이트 마켓(Sunday Night Market, 일요야시장)이 그렇게나 대단한지, 가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 같은지를 내게 물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치앙마이가 일단 한번 방문하게 되면(그 매력을 못 잊어) 여러번 가게 될 도시이니, 꼭 한번에 다 보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또, 선데이 마켓은 선배가 동남아 여행을 꽤 해보신 분으로서 예상하실 그런 야시장의 모습이고 규모가 좀 더 클 뿐이다, 고도 말했다. 워낙 나 자신이 여행에서 '꼭 해야만 하는 것'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미여서 나온 대답이었는데, 지금보니(그 의문을 염두에 두고 선데이 마켓을 다녀와보니) 도움이 안되는 조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선배, 정정합니다. 선데이 마켓은 웬만하면 가보시는게 좋겠어요.





경건한 금색 띠를 두른 사원의 마당에 다종다양한 먹거리가 가득 들어선다. 한낮에 대로를 호령하던 자동차와 스쿠터가 얌전히 엔진소리를 감추고 물러난다.  여행객들과 현지인들이 한데 섞여 북적이지만, 나름의 질서와 리듬이 있어 생각보다 혼란스럽지도 않다. 뒤늦게 아, 이게 그냥 '규모가 좀 더 큰' 수준이 아니었구나, 하고 깨달은 것은 내가 병적이리만치 심각한 길치라서였다. 남편이 사거리 각지의 주얼리샵을 가리키며 '저기가 바로 네가 작년에 귀걸이를 산 가게 아니냐'고 짚어주었을 때, 비로소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알아챘다.


작년에는 사원 마당에서 굴전과 팟타이를 사먹었더랬다. 굴전은 타이페이에서 먹었던, 갈색 빛으로 투명하고 몰캉한 전분이 듬뿍 들어간 것과 맛이 아주 비슷했는데, 그 위에 추가로 얹어주는 적갈색 매콤달달 소스가 없는 것이 달랐다.


사원 마당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소시지. 오리지널/신맛/매운맛 중에서 고를 수 있다. 가격은 한 개에 25 THB (한화 9백원).

올해는 점심에 먹은 백반이 채 소화가 다 되지 않아 소시지만 하나 사먹어 보기로 한다. 치앙마이 전통 소시지인듯 한데, 녹두당면과 찹쌀이 함께 들어가 있다. 며칠 전 그랩(Grab)으로 배달시켜 먹었을때는 녹두당면만 들어간 것, 찹쌀만 들어간 것, 똠얌 양념이 들어간 것 중 고를 수 있었는데, 당면과 찹쌀을 동시에 넣는 버전도 있구나. 길게 늘어선 줄이 좀처럼 줄지 않으니, 남편이 '손이 느린가보다'며 불평을 했다. 그런데 우리 차례가 가까워져 앞에서 보니 현지인들이 스무개도 넘게 포장을 해 간다. 오래 걸릴만도 하네. 소시지를 딱 한 개만 사는데도 초생강, 길게 썬 생강채, 작은 고추를 곁들여 준다.  


가볍게 요기를 한 대신, 스무디는 두 잔이나 마셨다. 사원 마당 야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수박 스무디 한 잔, 소시지를 먹은 뒤에는 파인애플과 패션프룻을 넣은 스무디 한 잔. 남편은 코코넛 워터와 과육을 함께 넣고 연유를 살짝 가미한 스무디를 마셨다. 중앙 코너에 위치한 가게에서 사 마셨는데, 과일이 많이 들어가 시럽을 넣지 않았는데도 충분히 달다. 블렌더가 두 개고 일하는 사람이 세 명이다. 사장인듯한 분이 가격을 잘못 계산해 10밧을 더 받았다가 이내 깨닫고 돌려주시며 몹시 미안해하신다. 일부러 그러신것도 아닌데요 뭘. 이번에 치앙마이 와서 마신 스무디 중 가장 맛있는 스무디였다.


태국 야시장 쇼핑에서 코끼리 바지를 빼놓을 수 없다. 코끼리 패턴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편의상 '코끼리 바지'라고 부르지만, 코끼리 외에도 다양한 패턴이 화려하게 들어가는 레이온 원단의 바지다. 보통 100밧에서 250밧 선으로 살 수 있다. 꼭 야시장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선택의 다양성으로는 선데이 마켓이 압도적이다. 사이즈가 커지고 디자인이 유니크해질수록, 그리고 원단이 좋아질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나의 경우, 내가 하비(하체비만)이기도 하고, 여차하면 남편도 입을 수 있어 짐이 가벼워지는 이점이 있으므로, 큰 사이즈(L이나 XL)를 사는 편이다. 우리 부부는 몸에 붙지 않고 통기성이 탁월한 코끼리 바지를 특별히 애정하여, 한국에서도 홈웨어로 자주 입었다. 다만, 최근 체감하기에 원단의 질이 꽤 낮아졌다. 몇번 입고 빨면 가랑이가 튿어져 구멍이 나기 일쑤고, 보풀도 금방 올라온다. 이런 옷을 자주 사서 입고 버리는 것이 환경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기는 하지만, 입지 않은 듯한 가벼움을 좀처럼 포기하기가 어렵다. 쨍한 색감과 화려한 패턴이 선사하는 홀가분한 기분은 덤이다. 올해는 코발트블루의 자잘한 코끼리 패턴 바지(120THB)와 암적색 큼직한 코끼리 패턴 바지(120THB), 그리고 원단이 좀 더 촘촘하고 광택이 나는 열대식물 프린트 바지 두 장(깎아서 400THB)을 샀다.





마침 일요일은 남편의 사십번째 생일이었다. 2013년 3월에 처음 만나 어느덧 함께 보낸 세월이 십 년이 되었다. 올 3월, 만난 지 십년 되던 날을 기념해 뭔가를 해줘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결국 평소와 똑같은 하루로 지나갔었다. 그날 저녁도 아마 배달음식을 시켜먹었거나 라면을 끓여먹었던 것 같다.  


사십세 생일은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밥은 뭘 먹고 싶고 어디에 가고 싶은지를 물었을 때 남편은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호들갑 떠는 게 제일 싫다고 호들갑을 떠는 남편 덕분에, 아름다운(은 불가능하고 최소한 단정한) 부인으로 변모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평소와 똑같이 브라탑과 코끼리 바지를 입고 외출했다. 주말이라 남편이 업무를 하지 않아도 되니 좀 더 멀리까지 구석구석 걸어다녔다.


극성맞은 태양열을 광대뼈 피부로 느끼며 치앙마이 대학 부근까지 걸어가 식당 '팍 타이 파탈룽' (ปักษ์ใต้พัทลุง-'파탈룽 남부'라는 의미로, 파탈룽이 태국 남부의 주 란다)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Cafe Arte (더티커피가 아주 맛있다)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쐬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걸어 싼티탐의 타닌 마켓 (Tha-nin Market)에서는 수제 감자칩, 호박칩, 생선칩, 땅콩을 샀다. 큰 봉지는 70밧, 작은 봉지는 20-50밧. 감자칩이 희한하게 색이 노랗지 않고 하얗다 싶었는데, 먹어보니 쌀가루를 섞어 뻥튀기처럼 튀겨낸 듯 쌀과자 맛이 났다.


남편이 작년에 치앙마이 백밧샵에서 산 면바지는 코끼리 바지와 달리 수십번 빨아도 튿어지지 않지만 그만큼 두껍고 무겁다. 타닌 마켓에서 빠져나와 Early Owls 라는 카페에 안착했을 때, 시종 땀에 젖어 있던 남편은 단비와 같은 에어컨 바람에 환호했다. 그리고 곧 잠에 빠졌다. 옆에서 나는 가방에 준비되어 있는 킨들을 꺼내 읽으며 두어시간을 그렇게 쉬었다. 시댁과 짧은 통화도 하고 화장실도 다녀온 뒤, 이제 선데이 마켓을 가려는데, 남편이 또 걷자고 한다. 삼십분 거리라 못 걸을 일은 아니지만, 까무러치듯 잠들어 방금까지 정신을 못 차리던 사람이 또 걷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택시비 백밧을 아껴 코끼리 바지를 하나 더 사라는 남편의 절약정신이 새삼 놀랍다. 나는 진절머리를 내며 그랩을 불렀다.


완충을 해도 노후 배터리는 금방 닳는 법이다. 코끼리 바지도 사야하고 실내 에어컨 바람을 막을 스카프도 사야하며 독특한 디자인의 티셔츠도 한두개쯤 사고 싶은 아내와 생일 저녁을 보내는 동안, 남편은 금세 다시 지쳐보였다. 그러나 나는 남편의 귀소욕구를 모른체하고, 올드타운까지 나온 김에 재즈펍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좋다는 노스게이트 재즈펍 (The North Gate Jazz Co-Op)을 아직도 못 가봤잖은가. 나보다 훨씬 음악을 더 잘 알고 좋아하는 남편이기 때문에 운을 떼본 것이었다.


재즈펍은 완전한 만원이었다. 바깥자리마저도 꽉 차서, 앉지 못한 사람들이 서서 공연을 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피로에 절은 남편을 세워둘 수는 없어 포기하고 귀가하려던 중, 구석에 자리가 난 것을 운좋게 발견했다. 남편과 나는 싱하(Singha) 한 병, 창(Chang) 한 병씩(병당 백밧)을 들고 공연을 봤다(기에는 잘 보이지 않았으므로, 들었다).


공연은 생각보다도 더 좋았다. 전자기타의 깊고 굵은 음색과 드럼의 다이나믹한 박동이 특히 근사했다. 남편이 '잘 하네'라며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 모습을 보고, 나는 내심, 뻔뻔하게도, 남들은 명품백이라도 선물하고 느낄법한 뿌듯함을 느꼈다.  

일요일 밤의 초만원 재즈 바 노스 게이트.  (The North Gate Jazz Co-Op), 와인과 칵테일도 파는데, 싱하와 창 같은 로컬맥주는 병당 100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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