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쳐다도 보지 말자 2

마약에 중독된 정신과 의사

by 어른이

정신과 선배 의사이자 마약 중독자인 환자분이 계신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환자분은 침대에 앉아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보고선 잠시 양해를 구한다는 손짓을 하고, 2주만 있다가 퇴원하니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쉬게 되어서 좋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배우자나 부모님인 듯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잠시 면담할 수 있을까요?"


"예, 여기서 하나요?"


"면담실로 가셔서 하시는 게 어떨까요?"


"네, 가시죠."


환자분이 일어나며 함께 가자며 손짓을 했습니다. 다른 환자들과는 다르게 주도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면담실에 들어가 마주 앉았습니다. 마약 관련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되었습니다.


"종이에 기록하면서 면담하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네 물론이죠. 저도 다 면담하고 나서 기억이 안 나서 곤란했던 적이 많았어요. 기록하면서 하면 좋죠."


"네 감사합니다. 제가 교수님께는 별 이야기를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혹시 어떤 일로 입원하셨는지 먼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그래요? 음.. 그래요. 사실 제가 중독이 조금 되어서 제가 부탁드려서 입원한 거거든요."


사실 중독 문제로 입원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환자분은 스스로 '중독이 조금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입원했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자신의 중독을 인정하는 것으로 느껴져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안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이라는 표현이 어쩌면 문제를 부정하고 축소하려는 것이었겠단 생각이 나중에 들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어떤 중독인가요?"


"아 네, 제가 허리 통증이 좀 심해서 마약성 진통제를 먹고 있거든요. 통증이 너무 심해서 약에 의존하게 되는 건 있는 것 같지만 나름 조절을 잘하면서 먹고 있어요."


"네 그렇군요. 어떤 마약성 진통제인가요?"


"트라마돌이랑 옥시코돈 같은 거 위주로 먹어요. 허리에 스테로이드 주사 넣는 것도 해봤는데 효과가 없어서 먹는 약으로 조절하고 있어요"


환자분은 펜타닐을 빼놓고 이야기했습니다. 트라마돌이나 옥시코돈은 마약성 진통제 이기는 하지만 펜타닐이 100~1000배 강한 약입니다. 처음부터 교수님한테 대략적인 것을 들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할걸 그랬습니다. 역시 거짓말은 안 하는 게 낫습니다. 일단은 질문을 이어 갔습니다.


"그 약들을 얼마나 쓰시나요?"


"음.. 그게 조금 복잡한데. 대략 1주일에 총 10알 정도 먹는다고 보면 돼요."


"아 그렇군요. 그 정도면 통증 조절이 충분히 되시나요?"


"부족하죠. 그래도 최대한 안 먹으려고 해요. 자주 먹으면 중독되고 몸에 안 좋을 거 같으니까."


환자분은 여전히 펜타닐 이야기를 뺐습니다. 이제는 그냥 직접적으로 물어봐야겠다 생각하였습니다.


"혹시 다른 약물은 사용 안 하십니까?"


"네? 네 따로 없어요... 아! 패치도 붙이고 있어요. 근데 그거는 뭐..."


"아 무슨 패치인가요?" 저는 속으로 펜타닐 패치겠거니 하고 예상했습니다.


"펜타닐 패치예요. 50 짜리. 근데 그거는 패치니까 상관없죠 뭐."


패치니까 상관이 없다니, 환자분은 펜타닐 패치가 중독이랑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잘 알만한 사람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가장 약한 펜타닐 패치가 12이고 그다음이 25인데, 50짜리를 쓰고 있다는 것부터가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패치는 얼마나 자주 쓰시나요?"


"아 그거는 용법에 맞게 쓰고 있어요. 용법 아시죠?"


"아 네... 사실 잘 모릅니다. 며칠에 한 번씩 교환하시나요?"


"아 모르시는구나. 그럴 수 있죠. 며칠에 한 번씩이 아니고, 통증이 심할 때 써요."


'그래서 얼마나 자주 쓰는지, 1주일에 몇 번이라든가 하루에 몇 번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해줘야죠 선생님...' 답답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맞다. 선생님은 지금 몇 연차시죠? (1년 차입니다) 이야, 제가 1년 차 하던 게 십수 년 전인데, 그땐 아무것도 몰랐었죠. 새로 배우면서 하느라 힘드실 텐데 파이팅이에요."


환자분이 말을 돌리고는 면담을 마무리하는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펜타닐 패치 이야기를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환자분이 원하는 대로 면담을 끝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입원 당일에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동의서 받고 면담 마치겠습니다. 아시겠지만 폐쇄병동 입원에 동의 입원 하신 것이고, 자타해 위험성이 높을 경우 환자분의 안전을 위해 물리적, 화학적 강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아휴 물론이죠.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네, 그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나 중독과 관련된 치료에 협조되지 않고, 치료진에게 위협적이게 되신다면 그것은 중독에 의한 행동으로 판단하여 BM을 시행하겠습니다."


"BM이요? 아, 이 병원에서는 그렇게 부르는군요. 저희는 행동 교정이라고 했어요. 물론이죠. 치료받으러 왔으니 협조해야죠.


환자분이 전자 동의서 패드에 손으로 대충 사인을 하고서 같이 면담실을 나왔습니다. 환자분이 펜타닐에 얼마나 중독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교수님꼐도 따로 보고 드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환자분은 중독 문제를 별일 아닌 것처럼 치부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저는 퇴근했습니다. 제 친한 친구이자 동기가 그날의 병동 당직이었습니다. 웬만한 일들은 그날의 당직이 해결을 하는데, 상의가 필요하거나 중대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당직이 주치의에게 연락해서 정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당직에게 전화가 오면 무슨 일이 생겼나 긴장이 되곤 했습니다.


자취방에서 쉬고 있는데 저녁 9시에 그날의 당직인 동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문제가 될만한 환자가 따로 없었기에 오늘 입원한 환자분 관련 전화겠거니 했습니다. 예상이 들어맞았습니다.


"OO야 통화되니? 오늘 입원한 중독 환자분 있잖아, 그분이 개방 병동으로 옮겨달라고 하시는데 너랑 교수님이랑 얘기된 거라고 하네. 맞아? 근데 이 밤중에 옮긴다고 하는 거부터가 좀 이상하긴 한데."


"오잉? 개방병동 옮긴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환자분이 그랬어?"


"아 그래? 그러면 그냥 내일 너랑 상의해 보시라고 할게?"


알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고 20분 정도 후에 다시 전화가 울렸습니다.


"야, 아까 그 환자분 설득이 전혀 안되는데? 엄청 예민하셔서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한테 소리도 질렀나 봐. 이러다 선을 넘을 거 같은데..."


"아이고 그래? 내가 가봐야겠네... 20분이면 가니까 기다려달라 해줄래?"


전화를 끊고 옷을 입고 병원으로 출발했습니다. 걸어서 20분이면 병동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가는 동안 BM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병동에 도착하니 환자분은 스테이션 앞에서 제 동기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동기가 저를 보고는 환자분에게 저랑 이야기 해보라하곤 바통을 넘겨주었습니다.


"아 주치의 선생님, 밤중에 오게 해서 죄송해요. 그냥 전화로 하면 될 얘기인데 굳이 오셨네요. 제가 개방병동으로 옮기려는데 자꾸 안된다 해서요. 도저히 말이 안 통하네요. 병동 규칙이 있다는 거는 이해 하지만 저는 정신과 의사니까 규칙 잘 따르면서 지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개방병동으로 옮기려고요."


"아 네, 환자분. 그런데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그만 주무시고 내일 교수님과 상의 해봅시다."


"아 거 참 답답하네요! 선생님도 말이 안 통하네. 하긴 전공의니까 그럴수 있죠. 교수님하고 얘기해야 겠네요. 교수님한테 전화하게 휴대폰 좀 줘봐요."


"그건 안됩니다. 필요하면 제가 전화 드릴테니 오늘은 여기서 하루 주무십시다."


"아니 그러니까! 내 폰을 주든 당신 폰을 주든 주면 알아서 전화해서 해결한다니까. 이해를 못해 이사람들이!!" 환자분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분 목소리를 낮춰 주세요. 주무시는 분들도 있고 병동에서 소리 지르시면 안됩니다."


"9시에 자긴 누가 자! 잔말 말고 빨리 핸드폰 달라니까!"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가 전화기를 들고 저를 보며 전화를 할지 물어보는 신호를 보고 짧게 끄덕였습니다. 보안 요원들을 불러달라는 의미였습니다. 간호사가 손가락 3개를 들어 보여 거기에도 끄덕였습니다.


"환자분, 협조가 안되시면 오늘 약속한대로 물리적 또는 화학적 강박을 해야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협박하는 거야? 어디 하늘 같은 선배한테 협박질이야! 어디 내 몸에 손하나 대봐, 내가 너희 다 콩밥 먹일테니까!"


"환자분 진정하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저희 치료를 잘 받으러 온 거잖아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시게 제발 진정 해주세요." 보안 요원들이 올떄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습니다.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지금 병동 하는 꼬라지 보면 진정하게 생겼냐고!"


환자분의 눈이 충혈되고 손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그 순간 보안 요원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열린 문으로 환자분이 냅다 문쪽으로 달려가는 것 입니다. 환자분이 문 바로 앞에 왔고, 보안 요원들은 당황한 모습이었습니다.


"못 나가게 막아주세요!"


제가 소리 질렀습니다. 보안 요원들은 의사의 지시 없이는 행동하면 안되는 원칙이 있어서 지시를 해야 했습니다. 보안 요원 셋 중에 하나가 문을 닫으려고 하고, 둘이서 환자분이 못 나가게 제지를 했습니다. 이제는 명백한 BM 상황이었습니다.


"자 이제부터 환자분 안전을 위해 BM 시행 하겠습니다. 보안 요원 님들 팔,다리를 하나씩 잡아주시고, 보호사 님도 도와주세요. 격리실로 옮기겠습니다. 간호사 선생님 할돌, 로라 원앰플씩 준비 해주세요."


"아니 뭐하는 거야!! 나 자의로 입원한거 몰라? 나도 의사라고! 너희 얼굴 다 기억했어 지금! 다 콩밥 먹일 줄 알아!!"


환자분은 계속 몸부림을 쳤지만 결국 몸이 통쨰로 들려 격리실에서 주사를 맞고 잠들었습니다. 환자분이 잠들자 보안 요원들이 물러났고, 병동 분위기도 일단 정리가 되었습니다. 시간은 밤 11시 였습니다. 교수님에게 상황을 전달하였더니 교수님은 필요한 조치를 잘 취했다며 고생했다고 해주셨습니다. 금단 증상이 어떤지, 금단 증상에 대한 치료를 고민해보라 하셨습니다. 전화를 마치고 긴장이 풀리자 저도 한숨 자고 싶어졌습니다.


환자분이 깨면 전화를 달라고 일러두고 저도 한숨 자러 당직실로 향했습니다. 동기는 다른 일이 있는지 당직실에 없었고, 저 혼자 였습니다. 2층 침대로 올라가서 이불을 덮고 바로 눈을 감았습니다. 환자분과 대화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까...


- 다음에 계속

분량 조절 실패했네요 ^^;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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