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 응급실 ep.5

공황 발작

by 어른이

살면서 공황 발작(panic attack)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나요?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0% 정도까지는 일생의 한 번이라도 공황 발작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제 생각보다는 높은 비율이어서 놀랐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아직까지 공황 발작을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일상생활 용어로 사용하는 '공황'과 정신과에서 이야기하는 '공황 발작'은 구분이 됩니다. 공황 발작에는 진단 기준이 있습니다. 갑자기 발생하는(sudden onset) 극도의(intense) 불안 또는 공포가 있으며, 수분 내로 최고조에 이르고, 두근거림, 호흡곤란 등 여러 가지 신체 증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의 인지적인 증상 등이 동반될 때 공황 발작을 진단합니다. 이런 공황 발작을 10% 나 경험해 본다는 것입니다.


정신과 외래에 방문한 환자로 한하면 한 번이라도 공황 발작을 경험했을 확률이 3~40% 까지도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한 번도 공황 발작 중인 환자분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공황 발작으로 인해 응급실을 찾아오는 환자분들은 자주 있었지만 대부분은 대기 중에 가라앉아서 제가 진료를 볼 때는 이미 공황 발작이 지나간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제가 처음으로 공황 발작 중인 분을 목격한 이야기입니다. 그 장소는 응급실이 아닌 지하철이었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저는 지하철로 출근 중이었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나와서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사람은 한두 명 빼고는 모두 자리에 앉을 정도로 적당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같은 칸의 왼쪽 반대편에서 앉아 있던 사람이 앞으로 쓰러지는 것입니다. 바닥에 부딪히는 크게 소리가 나진 않았고, 스르륵 바닥에 눕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여성분 한 분이 곧바로 다가갔습니다. 괜찮냐고 의식을 확인하는데 반응이 없었습니다. 순간 심정지, CPR 상황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가끔 공공장소에서 CPR 환자가 나타나면 멋있게 구해내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의식을 확인하고, 주변 사람에게 제세동기와 119 신고를 요청하고, 호흡과 경동맥을 확인하고 심정지가 확인되면 흉부 압박을 하는 것입니다. 주기적으로 교육을 받았기에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심지어는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라기까지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CPR 상황이 생기자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머릿속에 CPR 하는 과정이 안 떠올랐고, 막상 나서려니까 심장이 쿵쾅대며 너무나도 긴장되었습니다. 일단은 옆에 사람이 있으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쓰러진 분은 30대 남성 분 정도로 보였습니다. 옆에 다가간 분은 40대 여성분으로 보였습니다. 여성분은 남성분의 의식을 계속 확인했습니다.


"정신 차려보세요! 제 말이 들리세요? 제 말이 들리면 고개를 끄덕여 주세요!"


반응이 없었는지. 이 말을 계속 반복하였습니다. 그렇게 30초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흉부 압박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내가 나서야 하나?' 하는 순간에 남성분이 갑자기 숨을 몰아 쉬기 시작하였습니다. 1초에 두 번 내쉬는 정도로 정말 빠르게 호흡하였습니다. 많은 양의 공기가 좁은 기도를 통과하면서 나는 높은 소리가 지하철 안을 채웠습니다. 그 사이에 지하철은 정거장에 멈췄지만 승객을 태우고 다시 출발했습니다.


일단은 숨을 몰아서 쉬기 시작했으니 CPR 상황은 아닌 것 같았지만 아직 안심할 순 없었습니다. 과호흡이 호흡기 질환이나 심장 질환 때문인지 아니면 공황 발작인 것인지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3분 정도 후에 다행히 환자분이 옆에 있던 사람만 보일 정도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의식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응급환자가 발생하여 잠시 정차 하겠습니다."


다음 정거장에서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이 누워있는 남성분을 들어서 밖으로 옮겨줬습니다. 그동안 저는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공황 발작을 직접 본 적이 없었고, 다 나은 상태에서만 보았기에 공황 발작은 가벼운 증상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남성분이 보인 증상은 정말 심각해 보였습니다. 과호흡 하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도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상당히 괴로워 보였습니다.


착한 사마리안 법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선의로 응급상황에서 구조 활동을 한 사람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거나 감면해주는 법률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말도록 장려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의료인에게도 이 법률이 똑같이 적용 될까요? 의료인은 응당 응급 조치를 시행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과 달리 처벌을 받을 수도 있을까요?


우리나라 법률상으로는 일반인과 의료인의 기준을 따로 구분 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본인이 낸 사고가 아니라면 그냥 지나쳐도 특별히 처벌 받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사들 중 그런 응급상황을 자주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에는 그런 상황에서 나서길 꺼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속으로 그런 의사들을 비판하였습니다.


4대 의학 윤리 원칙 중 하나로 'Do no harm'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환자에게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 일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착한 사마리안법과 do no harm 의 이념은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응급 처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제가 나서 봤자 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핑계라는 것은 압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안 좋은 결과가 있을까봐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죠. 하지만 제가 느껴야 할 것은 의사로서의 사명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이고 응급처치를 직접 해본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대신 인간으로서 착한 사마리안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돌아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남성분의 근처에 가서 필요하면 바로 나설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신과 의사에게 착한 사마리안 법을 적용해볼 수 있을까요? 정신과의 응급 중에는 자살 위험이 높은 경우가 있죠. 최근에 건물 난간에 매달려 손만 놓으면 떨어지는 사람을 구조대가 말로 설득을 해서 구조하는 일화 해냈다는 들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그런 사람을 지나쳐서는 안될까요? 그런 사람을 일반인에 비해서 더 잘 구해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있어선 안 될 일이지만 상상을 해봅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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