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하교하자마자 왜 돈을 챙겨 나갔나
며칠 전 일이다.
"엄마, 나 잠깐 시현이랑 놀이터에서 놀다 올게."
하교한 아이가 현관에 신발을 벗어던지고 들어와 말했다. 그러더니 자기가 틈틈이 모은 돈이 들어있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낸다.
"돈은 왜 가지고 나가?"
"아... 시현이랑 음료수 하나씩 사 먹으려구."
시현이라면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다. 새 학년이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하굣길에 만난 작년 친구가 반가웠겠지. 그래도 초3 학생 둘의 음료 값으로 만 원은 과하다.
작년에도 때때로 천 원짜리를 두어 장 들고나가 포켓몬 빵을 사서 같은 반 친구와 나누어 먹곤 했던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때 나는 내심 아이 친구에게 식품 알레르기가 있으면 어쩌지, 한두 번 사 준 것이 습관이 되어서 우리 애만 보면 간식을 사 먹자고 꼬시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었다. 그 무렵에 학교에서도 '친구에게 먹을 것을 사 달라고 하지도 말고, 사 주지도 말자'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이 날아오기도 했다. 먹을 것을 사서 친구와 나누는 일 자체보다는 소액이라도 학교에 현금을 가지고 다녔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우려하여 생긴 방침이었을 것이다.
"후야, 만 원은 안 돼. 삼천 원만 가지고 나가서 그 금액에 맞춰 사 먹어. 혹시 양이 모자랄 수 있으니까 이것도 좀 가져가고."
나는 집에 쟁여 둔 쌀과자와 치즈크래커를 아이 손에 쥐여주었다.
"아니... 그래두... 그게... 나 천 원짜리가 없어서..."
나랑 눈도 못 맞추고 과자를 받아 든 아이 얼굴에 난처함이 배어나온다. 전에 없던 반응이라 아무래도 수상하다. 그때 불쑥 '학교에서 누군가 우리 아들에게 삥을 뜯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솟는다. 말끝을 맺지 못하고 우물거리는 아이에게 내 지갑에서 삼천 원을 꺼내 주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하고 내보냈다.
지폐 세 장을 꼬깃하게 쥔 채 단지 안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아이를 베란다에서 슬그머니 내려다보았다.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아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 너도 이제 3학년이니까 너의 사생활이 있겠지. 놀다가 다치지만 말고 들어와라.'
그런데 아이가 나간 지 10분도 안 되어 초인종이 울린다. 인터폰 화면을 들여다보니 아이가 1층 공동현관에서 우리 집 벨을 누른 것이다. 화면에 키가 닿지 않아 눈썹 위까지만 보이는 아이가 서성이고 있다.
"뭐 해? 올라오지 않고 왜 벨을 눌러?"
"엄마... 그게... 나 사실... 엄마 선물 사려고 했는데... 삼천 원으로는 살 수가 없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일단 집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내 생일은 한여름인데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아, 모레 화이트데이라고 나한테 뭐라도 사 주고 싶었던 건가?'
집에 올라온 아들은 울음을 참은 얼굴이었다. 추궁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아 일부러 씩씩하게 말했다.
"엄마 선물 사려고 했다고? 그럼 삼천 원으론 안 되지. 돈 두둑하게 챙겨서 나가. 엄마 기대하고 있을게!"
지갑에서 얼마인지 모를 돈을 더 챙겨나간 아들을 금세 집에 돌아왔다. 두 뺨이 발그레해져 돌아온 아들의 왼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오른손에는 샌드위치가 들려 있었다.
"엄마, 선물. 이거 좋아하잖아."
밝아진 얼굴로 커피와 샌드위치를 내 앞으로 내미는 아들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애초에 삼천 원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니 만 원을 가지고 나가려 했구나.
이 샌드위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시킨 첫 심부름으로 사 왔던 거다. 고열과 몸살로 침대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던 재작년 겨울, 반나절을 끙끙 앓다가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아들에게 카드를 쥐어주며 심부름을 시켰다.
"후야, 우리 집 앞에 파리바게트 알지? 거기 가서 엄마 샌드위치 하나만 사다 줄래? 너도 먹고 싶은 거 사고."
생애 첫 심부름이었던 아이는 잔뜩 긴장하며 물건을 고르고 카드를 주는지, 카드를 주고 물건을 고르는지를 물었고, 내게 거듭 확답을 받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몇 분이 흐르고 아이가 들고 온 파리바게트 봉투에는 속이 실한 샌드위치 한 팩과 꽈배기 하나, 주스 두 병이 들어있었다. 몹시 허기졌던 나는 샌드위치를 게걸스레 먹었다(똑같은 샌드위치를 이후에도 먹어봤지만 그 맛을 따라가지 못했다).
첫 임무 수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아들 얼굴엔 아직 가시지 않은 긴장과 뿌듯함이 남아 있었다. 우리 둘이 마주보고 빵을 한 입씩 나눠 먹던 그 순간에 느낀 충만한 행복감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태산 같은 두려움을 이기고 첫 심부름을 다녀온 네가 얼마나 기특하고 든든했는지... 어제 일처럼 생생한 그날의 기억을 나만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너도 그날, 기운을 차리고 일어난 엄마 얼굴에서 넘치는 행복과 감동을 보았구나. 엄마를 위해 사 온 샌드위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네게 큰 용기와 보람, 엄마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거였구나.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이 아픈 엄마가 이걸 먹고 힘을 내길 바랐던 거니?
결혼기념일에 꽃 한 송이 사 오는 법이 없는 무심한 남편에게 쌓인 서운함이 폭발해 '당신은 여자 마음을 너무 모른다, 내 애정 탱크는 늘 비어있다, 당신과 함께해도 난 늘 외롭다' 같은 말을 우악스럽게 쏟아내고 아들 옆에서 울다 잠든 며칠 전 밤, 먼저 잠든 줄 알았던 아이는 사실 깨어 있었던 모양이다.
'자는 체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너에게 곪은 내 마음을 들켰구나. 아빠를 향한 날 선 말들과 내 울음이 여리고 섬세한 너의 세계를 건드렸구나...'
나는 커피 한 모금에 눈물 한 방울, 샌드위치 한 입에 눈물 두 방울을 떨구면서 '맛있어, 고마워, 감동이야'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눈물, 콧물로 녹여가며 먹은 샌드위치 맛은 재작년의 그것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아이가 내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남편을 미워해선 안 되겠다. 집안을 가득 채운 냉랭한 기운 속에 아들을 오랫동안 가두었다가 마음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이번에는 내가 용기를 낼 차례다.
남편의 소울푸드인 제육볶음을 맛깔나게 차려 냉전 종료를 선언하고 우리 셋 마주보고 식사 한 끼 달달하게 해야지. 소울푸드로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나면 나와 남편 모두 서로에게 전할 온기가 채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