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만별 Jul 22. 2022

11화. 네가 토실토실해지는 동안 나는...

조리원 퇴소와 산후 탈모

 2주간의 산후조리를 마치고 조리원을 퇴소하는 날, 자그마한 아기를 안고 7월의 열기로 가득 찬 차에 올라탔다. 아직은 뼈마디가 시큰거려 에어컨을 켜는 대신에 창문을 열었다. 눅눅하고 뜨거운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조리원에서 지내는 동안 직장 동료들에게서 ‘지금 육아휴직을 한 건 신의 한 수였다’는 메시지를 자주 받았을 만큼 그해 여름은 살인적인 무더위로 전국이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조리원에서는 수유 시간에 잠깐씩 들어왔던 아기였는데... 꼬물거리는 그 작은 녀석과 함께 24시간 같은 공간에서 지내려니 어쩐지 낯설고 어색했다.

 매 끼마다 호텔식처럼 나오던 조리원 식단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삼시세끼 흐물흐물한 미역국이 커다란 솥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남편 회사에서 보내온 최고급 기장미역 덕분에 젖이 잘 돌았는지는 몰라도 아기는 모유를 흡입하며 하루가 다르게 튼실해졌다.


 두어 시간에 한 번씩 모유를 꿀떡꿀떡 들이켜는 아이의 허벅지가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처럼 토실토실해지는 동안 내 머리칼은 숭덩숭덩 빠져 하얀 마루 위를 수놓았다. 하루는 ‘내 머리가 빠지는 게 아니라 마루 틈에서 머리카락이 증식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다.  

    

 문제는,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머리칼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는 분도, 치우는 분도 ‘나’라는 것.

 내 모근을 이탈한 소중한 한 올 한 올과 마주하는 건 좀처럼 적응이 안 됐다. 내가 이동한 동선을 따라 흩뿌려진 머리칼을 한 데 모아 뭉쳐 놓으면 그 엄청난 양에 놀라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머리를 감은 뒤 배수구를 빈틈없이 꽉 막은 머리칼을 보면서 혹시  병에 걸렸을까 봐 혼자 벌벌 떨기도 했다.


 [잠깐만!] 산모의 80% 이상에게 나타나는 산후 탈모, 왜 생기는가?

 임신 중에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증가하면서 모낭의 성장을 촉진시켜 머리카락이 빠지는 시기를 연장한다.
 출산을 한 뒤 호르몬이 정상 수치로 돌아오게 되면서 임신 기간에 빠지지 않던 모발이 한꺼번에 빠져 산후 탈모가 나타나게 된다. 회복하는 데에는 적어도 일 년이 걸리고, 스트레스와 영양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면 회복이 더딜 수 있다.


 신생아 돌보기, 청소, 빨래, 요리...

 조리원에서는 누군가 대신해 주던 일들을 우유 공장이 24시간 가동되는 몸으로 혼자 하게 되어서야 ‘조리원은 천국’이라는 말이 진리였음을 깨달았다.

 

 천국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그깟 15초짜리 맥주 광고에 홀려 조리원 퇴소일만 손꼽아 기다리던 과거의 나(키친 드링 10화  참고)를 만나면 멱살을 잡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지금을 즐겨... 넌 곧 똥도 혼자 못 싸게 될 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