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남이 해 주는 음식을 먹는다거나 일주일에 두어 번 산모 마사지를 받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지만 조리원 생활이 마냥 한가하지만도 않다. 서너 시간에 한 번 유축을 해서 젖병 가득 모유를 담아 두어야 하고, 아이가 방으로 오면 직접 젖을 물리는 연습도 해야 하고, 모빌 만들기나 산모 요가 같은 프로그램에도 참석한다. 오로가 원활히 배출될 수 있도록 하루에도 여러 번 좌욕을 하고, 파라핀 기계 안에 손목을 담갔다 빼며 저릿하고 시큰한 손목을 잠시나마 달래주는 일도 중요한 일과다.
추노꾼의 형상을 하고 복도를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면서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 때문에 사람들의 면회가 일절 허용되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게 낯설기만 한 조리원에서 그나마 행복 지수가 급격히 올라가는 시간대는 저녁 7시 이후.
방까지 배달된 저녁밥을 꼭꼭 씹어 먹으며 재밌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동안만큼은 출산으로 인해 내 몸에 남아있는 크고 작은 통증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출산 후 호르몬이 널뛰기를 하는지 다른 때 같으면 피식거리지도 않을 장면에서 배꼽을 잡고 데굴데굴 굴렀고,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보고 눈물, 콧물로 이불을 흥건히 적시기도 했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엄마가 딸에게> 가사 中
가사가 왜 그리도 우리 엄마가 갓 엄마가 된 내게 전하는 말 같은지, 가수 양희은과 이수현이 <엄마가 딸에게>를 함께 부르는 장면을 보고 어린애처럼 “엄마~엄마~”를 불러대며 대성통곡했다.
이렇게 TV에 푹 빠져 있다가 희열과 노여움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술 광고’가 나올 때였다.
아름다운 수지의 이목구비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녀가 흔드는 초록 병을 따라 동공이 좌우로 움직인다.
송중기의 손에 차가운 이슬이 맺혀있는 맥주잔이 들려있다. 그의 꿀렁대는 목울대를 타고 노란 액체가 넘어가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입맛을 쩝쩝 다신다.
15초짜리 광고가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해소되지 않은 갈망을 품고 자야 하는 현실이 분하기까지 했다.
애주가였던 산모는 7월 삼복더위에 조리원에 갇혀 몇 날 며칠 미지근한 물만 마셔대더니 서서히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천국은 무슨... 어서 지옥 같은 이곳에서 탈출해야만 한다!나가는 그 즉시, 축배를 들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