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신혼여행지로 택한 멕시코 ‘칸쿤’까지는 경유지 대기 시간을 포함하여 30시간 가까이 걸렸다. 칸쿤에만 도착하면 짙푸른 바다, 이글거리는 태양, 정열적인 멕시칸, 속이 꽉 찬 타코, 결혼반지를 나눠 낀 남자와의 달콤한 밤이 기다리고 있는데 공항에서 새우잠을 잔들 대수겠는가.
허니문을 떠난 신혼부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 리조트에서 무한 제공하는 모히또를 마셨다.
싱그러운 연둣빛, 청량한 하늘빛, 생기 있는 핑크빛... 형형색색의 모히또는 몇 날 며칠을 마셔도 질리지 않았다.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다가 활자가 겹쳐 보이기 시작하면 책을 얼굴에 덮고 자면 그만이다.
잠과 함께 술이 깨면 수영장 중앙에 있는 바(bar)를 향해 개헤엄을 치고 가면서 외친다.
“One more, please!"
칸쿤으로 향할 때와는 달리 한국으로 귀국하는 일은 고행이었다.
칸쿤에서의 마지막 날, 지글거리는 한낮에 뜨거운 백사장에서 ‘나 잡아 봐라’를 시전하다가 햇빛 화상을 입은 것이다. 팔뚝, 얼굴 등 태양에 노출된 피부는 이미 흡수한 열기를 뱉어내지 못했다. 몸 안의 모든 세포가 씩씩거리고 있었다.
로비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나를 본 리조트 직원은 깜짝 놀라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차가운 슬라이스 오이와 알로에 젤을 가져왔다.
불행히도 직원의 응급처치가 아무런 효험을 보지 못한 채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승객들로 꽉 들어찬 비행기에서 끙끙 신음을 내뱉다가 승무원을 불렀다. 내가 아리따운 그녀에게 뭘 요구했겠는가.
바로 ‘술’이다.
‘술이라도 마시면 통증을 느끼는 감각이 둔해지지 않을까? 잠들면 더 좋고.’
음미할 새도 없이 레드와인을 목구멍에 흘려 넣었다. 잠이 올 기별이 없자 남편 몫으로 시킨 하이네켄을 낚아채서 위장에 쏟아부었다.
이런 젠장. 작전 실패다.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붓고 만 것이다.몸은 점점 더 달아올랐고, 쓰라림과 가려움 사이에서 몸부림치느라 한숨도 못 잤다.
27시간 후,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몰골로 한국에 도착한 나는 대학병원 응급실 침대에 누워 처치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날의 당직의는 새색시의 날숨을 타고 흘러나온 술 냄새를 맡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