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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몽당연필 Jul 13. 2022

7화. 예비 시아버지와 짠!

예비 며느리, 이만 물러갑니다

  애인의 부모님에게서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결혼할 나이가 된 아들이 1년 넘게 만나는 여자가 누구인지 궁금하셨을 것이다.

 태연한 척하려 했는데 긴장했었나... 빈손으로 갔을 리는 없는데 뭘 사갔는지도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어머님은 맛있는 집밥을 한 상 차려 주셨다. 나... 진짜 긴장했었나 보다. 그날 식탁 위에 뭐가 올라왔는지 역시 전혀 기억이 안 난다.


 평소 반주를 즐겨하시는 아버님께서는 내게 술 좀 할 줄 아냐고 물으셨다. 냉큼 “네!”라고 대답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남자 친구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 나보다 술 잘 마셔요. 술 좋아해. 크크.” 

(인간아... 제발 눈치 좀 챙겨..)


 아버님 얼굴에 언뜻 희색이 비치더니 소주잔에 한 잔 따라주신다.


 “아들 두 놈 다 술을 안 즐기니 영 재미가 없었는데 잘 됐네.”


 한두 잔 마시니 긴장이 풀렸는지 ‘어머님, 이거 너무 맛있어요’, ‘아버님, 한 잔 더 받으세요’하며 곰살맞은 척을 하고 앉아있었다. 어른들은 뭐든 복스럽게 먹는 걸 좋아하니까 밥도 숟가락 가득 퍼서 맛있게 먹어야지.

 (아, 알겠다. 밥 깨지락거리지 않기, 반찬 휘적거리지 않기, 젓가락 똑바로 쥐기, 아버님 술잔이 비었는지 확인하기 등 온갖 것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뭘 먹었는지 생각이 안 나는 거였다.)


 아버님과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걸 어머님도 크게 싫어하지 않는 눈치셨다(고 하면 내가 너무 눈치 없는 건가?).

 대작 상대가 생겨 기분이 좋아지신 아버님과 나 사이에 술잔이 여러 번 오가고, 그날 둘이서 소주를 무려!!!!!

 

 ‘한 병’ 마셨다.


 ‘아... 아버님...?


 나는 이제 막 부릉부릉 시동이 걸렸는데...  아버님께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냐고 닦달할 수는 없으니 그쯤에서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짓고 퇴장하는 수밖에.

 집까지 바래다주는 남자 친구의 손을 끌고 2차를 가서 토라진 나의 위장이 흡족해할 때까지 알코올을 주입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째 좀 이상하다...

 흔히 장인이 예비사위를 시험할 때 ‘술’을 이용하지 않나? 나 그날 예비 시부모님께 테스트받은 거였구나...


 과거의 나, 잘했어.


'아버님, 한 병 더, 콜?'을 외치지 않아 적령기에 결혼할 수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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