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성격도, 외모도 아주 모범생인 내 남편은 술을 조금 마실 줄 알지만 즐기지는 않는다.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날, 김치냉장고에서 딱 좋은 온도로 식은 국산 맥주 한 캔 정도면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500ml면 말도 않지, 고작 355ml 한 캔에 얼굴이 벌게지는 걸 보면 술이 안 받는 체질인 게 분명하다.
이런 남자와 연애 초반에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이 남자, 진짜 순댓국만 두 그릇 시킨다.
순댓국을 ‘식사’로 생각하는 남자 앞에서 순댓국을 ‘안주’로 여기는 여자는 엄청난 내적 갈등을 한다.
이 타이밍에 소주를 주문하면 어이없어하려나 하고 눈치를 보다가 슬슬 분노가 차오른다.
‘나 술 좋아하는 거 알면서 왜 안 시켜? 엉? 인내심 테스트하는 거야? 이런 식이면 나 연애 계속 못해!’
마음속에서 혼잣말이 메아리친다. 결국 참다못한 나는 순댓국이 식기 전에 우렁차게 외친다.
“여기 참이슬 한 병요! 잔은 한 개만요!”
그는 우물거리던 순대를 채 삼키지도 못하고 눈이 똥그래져서 날 쳐다본다.
“왜요? 순댓국 안주잖아요, 안주. 소주 없이 먹으면 순댓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나 혼자 다 마실 생각에 잔도 하나만 달라고 했다고. 아, 통쾌해라.
‘아니 근데, 저... 저기요, 이거 무슨 상황이죠...? 주문은 제가 했는데 왜 소중한 두꺼비와 잔을 그의 앞에 놓아주시는 건가요?’
이 식당 서빙 직원도 내 애인만큼 눈치 없긴 마찬가지다.
이 남자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는지 회사에 가서 친한 동료들에게 전날의 일을 말했고, 빵 터진 동료들 사이에서 ‘순댓국론’(?)이 하나의 이슈로 떠올랐단다.
다행히 팀원 중에 애주가가 많았던지라 ‘순댓국은 안주다’에 손을 든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술에 관해서라면 진심인 동료들은 나를한번 만나고 싶어 했다고 한다.(그들은 결혼식장에서 순백의드레스를 입고 조신하게 입장하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10년 전, 남편 직장에서 널리 회자된 ‘순댓국론’은지금까지도잊을 만하면 한 번씩 동료들 입에 오르내리는 화두 중에 하나라고 하니 괜히 뿌듯해진다...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