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것 없는 이상적인 딸'을 의미하는‘엄마 친구의 딸’이 아니라 그냥 ‘엄마 친구이자 딸’.
엄마와 나는 쇼핑도 함께 하고, 국내외 여행도 여러 곳 다녔는데, 뭐니 뭐니 해도 둘이 제일 자주 간 곳은 ‘사우나(또는 찜질방)’였다. 초등학교 때 거적때기 같은 걸 뒤집어쓰고 숯가마 같은 델 잘도 들어갔다. 땀을 쭉 빼고 나와서는 ‘시원하다’고 생각했으니 나는 어릴 때부터 찜질이나 사우나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성인이 된 후, 사우나를 하고 나와서 마시는 생맥주 한 잔(물론 한 잔에서 끝나지 않지만)의 맛을 알아버렸다.
'영롱한 호박색 맥주. 호박죽도 이보다 달콤하진 않을 거야...'
엄마랑 내가 한 잔 마시고 있으면 뒤늦게 나타난 누군가 와서 자연스럽게 합석하거나 바로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단골 호프집이 사우나와 같은 건물에 있어서 테이블을 채우는 멤버도 대부분 아는 분들이었다.
사우나에서 자주 보는 엄마 친구 뻘의 낯익은 얼굴들.
멀끔하게 차려입었을 때보다 홀딱 벗고 머리에 수건을 둘러써야 더 알아보기 쉬운 얼굴들.
이미 서로의 알몸을 여러 번 스캔했기 때문에 사석에서 마주쳤다고 해서 불편할 것 하나 없는 사람들.
'엄친'들과 한 잔, 두 잔, 잔을 부딪치다 보면 빈 치킨 접시가 나가고 동태탕이 올려지고, 맥주잔은 빠지고 소주병이 들어온다. 그렇게 자주 어울리다 보니 아주머니들은 나를 ‘누구의 딸’로 여기기보다 ‘사우나 멤버 중 한 명’, ‘사회 친구’로 생각했다. 나는 예전부터 나이차가 많은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고, 또래보다 어른들과의 관계가 더 편했기 때문에 호프집에서의 시간은 늘 즐거웠다.
시월드 뒷담화, 자식 자랑, 요새 앓고 있는 지병 등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어찌나 맛깔나게들 하시는지 배꼽이 제자리에 붙어있을 새가 없었다.
아주머니들은 맞장구 잘 쳐주고, 오늘 나눈 이야기를 다른 곳에 전할 리도 없는 나를 편하게 생각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술을 잘 마시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셨다. (아무도 나를 며느리 삼고 싶단 말씀은 안 하셨지만.)
마지막 한 병이 아쉬운 순간, 부족한 2%를 채우기 위해 끝까지 대작하는 건 주로 엄마보다 주량이 센 나였다.
엄마가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여서 술자리에 못 나가겠다고 하시면 ‘흑기사 딸내미 있잖아. 대타로 내보내.’라고 할 정도였으니 학교와 직장에 이어 ‘찐 어르신’들의 음주 세계에도 당당히 발을 붙인 것이다.
스무 살 이상 차이 나는 ‘사우나 이모들’과의 인연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해마다 김장 김치를 경비실에 맡겨두고 가시는 이모도 있고, 지나가다 마주친 나의 아이에게 죠스바를 사서 손에 들려주시는 이모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