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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몽당연필 Jul 08. 2022

3화. 회식은 갑질인가 복지인가

그 상사에 그 직원

 학원 강사 면접 날, 시커멓고 깡마른 학원장의 관상(?)을 보고 도망갔어야 했다. 원장님은 격일로 회식을 열었다. 강사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건 핑계고 원장님 본인이 술을 너무 좋아했다.

 처음엔 이 돈으로 월급이나 올려주지 싶었는데, 나중에는 우리 학원의 최고 복지 혜택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느새 나는 술도, 술자리도 즐기고 있었다.


 학생 시절의 엠티 때처럼 학원 회식에서도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볼 수 있었다. 깍쟁이 영어 강사 A는 술을 마시는 척하고 입에 머금고 있다가 물을 마시는 척하면서 물 컵에 뱉어냈고(그 아까운 걸 왜?), 학원에서 원장 빼고 유일한 남자였던 수학 강사 B는 얼큰하게 취해서는 포장마차 외부에 있는 화롯가에서 주인이 구워야 할 고등어를 뒤집고 있었다. 어디서 났는지 목장갑까지 챙겨 끼고서 말이다.      


 딱딱하고 경직됐던 사람들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기에 제일 빠른 수단은 역시 ‘알코올’이다. 나는 알코올이 인간에게 주는 ‘허술함’과 ‘느슨함’, 그리고 ‘나른함’을 사랑했다.


 회식 자리에서의 나의 음주 패턴은 1차에서 따라주는 대로(혹은 속도가 안 맞으면 혼자라도 따라서) 홀짝홀짝 얌전히 마시다가, 2차로 간 맥줏집에서부터 말이 조금 많아지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노래방에 가면 허벅지에 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탬버린을 내리쳐가며 노래를 부른다.

 목구멍에서 피 맛이 날 때쯤 사람들과 헤어지고 편의점에 들른다. 폴라포나 쭈쭈바같이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며 걸어가면 금세 집에 도착한다. 겨울이라면 해장에 어묵 국물만 한 게 없다. 분식 포차 앞에서 500원짜리 꼬치 어묵을 손에 들고 국물을 종이컵에 무한 리필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갈지(之)’ 자로 걸어갈지언정 필름이 끊긴다는 게 뭔지 몰랐던, 간이 짱짱한 20대였다.     


 나는 원장님의 총애를 받으며 꽤 오랜 기간 그 학원에서 '말순'이라는 가명으로 일했다. 강의 첫날, 내 이름을 묻는 학생들에게 본명 대신 툭 뱉은 이름이 어쩌다 ‘말순’이었다.

 ‘말순’을 본명으로 알고 있는 순진한 아이들은 외모와 안 어울린다며 안타까워했지만(후훗), 곧 학생들 입에 ‘말순 쌤’이 입에 착 감길 정도로 익숙하고 친근한 제2의 이름이 되었다.


 강사들 사이에선 ‘말순’이 아니라 ‘말술’로 불린다는 건 몰랐겠지,  녀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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