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열 살 때 처음 술을 마셨다
음주에 대한 최초의 기억
나의 최초의 음주 나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만으로 치면 10세.
등산을 마치고 우리 집에 놀러 오신 이모부가 내게 막걸리 한 모금을 건네셨다. 어른이 주는 술은 마셔도 된다면서 벙글벙글 웃으며 내 반응을 기다리시던 이모부.
뽀얀 게 우유 같기도 하고, 요구르트 같기도 해서 큰 거부감 없이 한 모금 꼴깍 삼켰다.
‘오오!’
신세계였다. 살짝 텁텁하면서도 달큼한 이 맛! 맛있었다!
아쉽지만 여기까지. 한 잔이 아까운 어른들이 내게 두 모금을 허락할 리 없었다.
그다음은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 주종(酒種)은 소주.
애들이 어떻게 구해왔는지(확실한 건 나는 아니다) 소주를 보온병에 담아 물처럼 위장하거나, 2단 도시락 아랫칸(밥 칸)에 팩소주를 숨겨 왔다. 그러나 우리의 교관 선생님이 누구더냐. 수백 학교 학생을 다 년간 상대한 호랑이 교관에게 그런 빤한 방법들이 통할 리 없었다. 입소 첫날, 교관들은 강당에 모인 학생들의 짐을 일일이 검사했다. 물통을 열어 냄새로 액체의 정체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각 반마다 운 좋게(?) 선생님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난 술이 몇 팩씩 살아남았다. 친구들은 생존한 팩소주를 소중하게 품고 숙소에 들어가 온갖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해 감쪽같이 숨겼다. 2차 검사에 대비한 것이다. 취침 시간에 방 안의 불을 모두 끄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얼마 되지도 않는 소주를 감질나게 돌려 마셨는데, 먼 길을 떠나온 수학여행 첫날이라 소주 맛이 어떻고, 기분이 어떻고를 느낄 새도 없이 곯아떨어졌다.(아닌가? 소주 한 모금에 기절했던 건가?)
수능 100일 전에 대학로에서 ‘100일 주’도 마셔봤고, 수능 끝나자마자 반 친구들과 우이동 엠티(MT)촌에 가서 소맥도 말아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 이게 가능했지? 사장님들 반성하세요...)
엠티촌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버라이어티 했다. A의 위에서 역류해 나온 토사물로 오늘 먹은 안주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 한밤중에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가 발목을 접질린 B는 응급상황인데도 집에 안 가고 울면서 소주를 마셨다. C는 다음 날 아침, 해장 라면을 한 냄비 끓여 내와 숙취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한 걸 보면 나는 술을 먹었으되 속된 말로 ‘꽐라’가 되지 않을 정도의 주량과 정신력을 소유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비합법적인 음주 역사를 거쳐 01학번 대학생이 된 나는, 이때부터 음주 경력을 착실히 쌓아나가면서 자칭, 타칭 ‘주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