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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별 Jul 07. 2022

2화. 술 푼 대학생활

알코올학 전공

 대학에 입학하자 ‘신입생 환영회’를 시작으로 수많은 술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마다 거대한 플라스틱 맥주 피처가 비었다 채워지길 반복했다.

 ‘어느 고등학교 나왔냐’, ‘왜 이 전공을 택했냐’, ‘남자 친구는 있냐’ 등 고리타분한 질문이 오갔지만, 자리를 마련한 선배들과 초대된 교수님들의 관심을 듬뿍 받는 신입생 입장은 일생에 한 번뿐인데 어찌 신나지 않겠는가!

 그런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하는 한두 명에 꼭 내가 끼여 있었던 걸 보면 술을 어지간히 잘 마시기도 했나 보다.


 대학교 2학년 때, 발군의 음주 실력(?)을 알아본 학생회장 선배는 추천이나 투표 등 그 어떤 과정을 거치지 않고 꼬부라진 혀로 나를 딱 찍어 자기를 보필할 부학생회장으로 임명했다. 선배는 '술 잘 먹는 애가 일도 잘한다'는 근거 없는 이유를 들었고, 동기와 선후배들은 풀린 눈동자로 동의를 대신했다.


 비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부학생회장이 된 나는 1년 동안 자잘한 학과 업무를 열정적으로 수행했는데, 그중 가장 큰 업적은 축제기간에 오픈한 ‘주점’이었다. 그야말로 술이 ‘술술’ 팔려나가 학과 재정에 꽤 많은 보탬이 된 것이다(그해 축제 기간 2박 3일 동안 제일 장사가 잘 되었던 학과 1, 2위를 다퉜다).

 자연스럽게 다음 해 나는 과 학생회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나에게도 대학 생활 동안 ‘술’ 때문에 포기한 일이 하나 있다.

 대학 방송부에 대한 로망이 컸던 나는 꽤 까다로웠던 필기와 면접시험을 통과하여 대학 방송국 보도부 수습기자가 되었다. 3개월의 수습 기간이 끝나면 정식으로 선배에게 해당 부서의 업무를 배우고 일에 투입될 수 있었는데 ‘마의 3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뛰쳐나왔던 것이다.


 곱상하게 생긴 아나운서 선배부터 시니컬한 제작부 선배까지 어쩜 하나같이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고’, ‘매일 마시는지’……. 문제는 수습기자인 나는 그렇게 퍼마시고도 다음 날 8시까지 학교 운동장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가 아침 방송을 모니터링하고 서면보고를 해야 했던 것이다. 결국 피로와 숙취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두 달을 채우지 못하고 방송국 탈퇴 선언을 했다. 선배들은 충격을 받았고, 내가 꾀어서 엉겁결에 같이 방송국에 들어갔던 나의 베스트 프렌드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결국 그 친구도 얼마 안 되어 술을 못 이기고 탈퇴 수순을 밟았다).  

   

 이렇게 4년이라는 기간 동안 ‘술로 이룬 일들’과 ‘술 때문에 이루지 못한 일들’이 얽히고설킨 채로 나의 대학 생활은 그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지난 4년이 내 술 역사의 서막에 불과했다는 걸 학사모를 쓰고 환하게 웃던 졸업식 날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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