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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몽당연필 Jul 11. 2022

5화.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

순댓국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실제 성격도, 외모도 아주 모범생인 내 남편은 술을 조금 마실 줄 알지만 즐기지는 않는다.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날, 김치냉장고에서 딱 좋은 온도로 식은 국산 맥주 한 캔 정도면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500ml면 말도 않지, 고작 355ml 한 캔에 얼굴이 벌게지는 걸 보면 술이 안 받는 체질인 게 분명하다.

     

 이런 남자와 연애 초반에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이 남자, 진짜 순댓국만 두 그릇 시킨다.

 순댓국을 ‘식사’로 생각하는 남자 앞에서 순댓국을 ‘안주’로 여기는 여자는 엄청난 내적 갈등을 한다.

 이 타이밍에 소주를 주문하면 어이없어하려나 하고 눈치를 보다가 슬슬 분노가 차오른다.


 ‘나 술 좋아하는 거 알면서 왜 안 시켜? 엉? 인내심 테스트하는 거야? 이런 식이면 나 연애 계속 못해!’


 마음속에서 혼잣말이 메아리친다. 결국 참다못한 나는 순댓국이 식기 전에 우렁차게 외친다.


 “여기 참이슬 한 병요! 잔은 한 개만요!”


 그는 우물거리던 순대를 채 삼키지도 못하고 눈이 똥그래져서 날 쳐다본다.


 “왜요? 순댓국 안주잖아요, 안주. 소주 없이 먹으면 순댓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나 혼자 다 마실 생각에 잔도 하나만 달라고 했다고. 아, 통쾌해라.


 ‘아니 근데, 저... 저기요, 이거 무슨 상황이죠...? 주문은 제가 했는데 왜 소중한 두꺼비와 잔을 그의 앞에 놓아주시는 건가요?’


 이 식당 서빙 직원도 내 애인만큼 눈치 없긴 마찬가지다.      

 


 

 이 남자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는지 회사에 가서 친한 동료들에게 전날의 일을 말했고, 빵 터진 동료들 사이에서 ‘순댓국론’(?)이 하나의 이슈로 떠올랐단다.

 다행히 팀원 중에 애주가가 많았던지라 ‘순댓국은 안주다’에 손을 든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술에 관해서라면 진심인 동료들은 나를 한번 만나고 싶어 했다고 한다.(그들은 결혼식장에서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조신하게 입장하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10년 전, 남편 직장에서 널리 회자된 ‘순댓국론’ 지금까지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동료들 입에 오르내리는 화두 중에 하나라고 하니 괜히 뿌듯해진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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