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초,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 퇴근길에 마트에서 병맥주를 부지런히 사다 날랐다. 저녁마다 남편과 잔을 부딪치고, 안주와 함께 상사를 씹으며 하루의 업무 스트레스를 날렸다.
술을 마실 이유는 만들려고 마음먹으면 끝도 없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
날이 좋다: 일단 나가야 된다. 호프집 야외 테이블에서 치킨을 발골한다. (+ 생맥 n잔 마시다가 소주로 환승)
비가 온다: 타닥타닥 빗소리 들으면 기름 튀는 소리가 연상되지 않는가. 파전을 튀기듯 부쳐서 온 동네에 기름 냄새 좀 풍겨준다. (+ 막걸리)
남편이 승진했다: 사치스럽게 광어에다 우럭까지 풀세트로 마누라가 쏜다. (+ 참이슬 안 마실 거면 애초에 회도 안 시킨다.)
부어라 마셔라 거칠 것 없었던 1년 반이 지나고...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하게 뜬 두 줄은 방탕한 나의 음주 생활이 종료되었음을 알렸다.
기쁘긴 한데... 이 불안함은 뭐지...?
나... 하루아침에 술 끊을 수 있을까?
술병을 들고 동네를 배회하는 만삭의 임산부가 되지는 않겠지...?
걱정이 무색하게도 모성은 위대했다. 인내가 아닌 본능으로 술과 작별했다. 임신임을 알게 된 순간부터 알코올이 끌리지도, 당기지도 않았다. 아기를 품고도 술을 못 끊을 정도로 막장은 아니었나 보다.
안정기가 될 때까지 임신 사실을 양가에 알리지 않았다. 남편이 해외로 출장을 떠나고 나 혼자(아니, 뱃속의 아이와) 덩그러니 남은 집에 친정엄마가 방문했다. 엄마 손에 들려있는 봉투 속에서 병맥주 두어 병이 쟁그랑 쟁그랑 부딪치고 있었다. (뜨헉!)
“오늘은 안 마실래요. 머리가 좀 아파서…….”
“네가 술 거부하는 애냐? 너 임신했지?”
딩.동.댕.
우리 엄마의 모성 또한 위대했다.
이렇게 감동이라곤 1도 없이 친정엄마에게 ‘임밍아웃’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뱃속의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만 하면 바로 음주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모유 수유 기간'까지 계산에 포함하지 않았던 무지한 예비엄마는 머지않아 산후 우울증에 걸려 밤마다 벽지를 긁으며 울부짖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