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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몽당연필 Oct 01. 2022

13화. 아기가 자면 술상을 차렸지

술 때문에 단유한 건 아니지만

 아기 낳으면 최소한 1년 정도는 모유를 먹여야지 했는데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모유수유 4개월이 넘어가면서 젖이 자주 뭉쳐 전문 마사지를 받아 겨우 풀어냈다. 젖 뭉침 마사지는 정말이지 출산의 고통과 맞먹는지라 이쯤에서 수유를 중단하기로 마음먹었다. 곧 복직도 해야 할 터였다.

 2개월 동안 모유와 분유를 번갈아 먹이며 천천히 단유 준비를 했고, 다행히 아기는 큰 무리 없이 분유로 갈아타는 데 성공했다.

 

 6개월 간의 모유수유에서 해방된 나는 고삐가 풀린 채로 매운 닭발에 소주, 순대에 막걸리, 아무거나에 맥주 등 꿀 조합을 찾아 먹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때 필요한 조건 몇 가지.


 1. 다급한 토닥거림으로 아기를 급히 재운다. (물론 금세 깨지만..)


 2. TV를 보되 연속성 있는 드라마는 제외, 짧고 굵은 재미가 보장된 예능 프로그램을 선택한다.


3. 곧 남편이 퇴근할 테고, 얼마 못 가 아기도 깰 테고, 술과 안주도 금세 식을 테니 최대한 빠르게 술상을 비운다.


 내게 허락된 시간은 겨우 한 시간 남짓. 하루의 고단함이 사르르 녹아내리고, 뻣뻣하게 뭉친 근육이 말랑해지는 힐링 타임.


 육아 선배들은 "앉아 있을 수 있을 때 서 있지 말고, 누워 있을 수 있을 때 앉아 있지 말라" 했지만, 명료하게 깨어있는 의식이 내게 속삭인다. 


 '바로 지금이야! 하고 싶은 거 다 해~'


 직장도 못 나가고 친구도 못 만났던 모유 수유기의 한을,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으로 풀었다.


 알싸한 닭발을 쪽쪽 야무지게 발라 먹으며 아기가 기적적으로 내일 아침까지 통잠을 자 주길, 남편이 야근을 하고 새벽녘에 돌아와 주길 속으로 빌었다.

 하지만 매번 야속하게도 소주잔에서 찬 기운이 걷히기도 전에 아기가 "끙애~~~~~~~"하고 온 동네 떠나가라 울어 젖히거나, 남편이 생전 안 하던 칼퇴를 해서는 밥솥을 열어 보는 바람에 짧고 달콤한 휴식이 강제 종료되곤 했다.


 아까운 콜라겐...

 내가 그때 닭발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더라면 지금보다 피부가 촉촉탱탱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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