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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별 Oct 21. 2022

17화. 개인 경비 구역 JSA

우리 집 JSA는 과연?

 곧 있으면 아이가 유치원에서 하원할 시간이다.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낡은 에코백 하나 덜렁 메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편의점으로 간다. 불룩해진 에코백에는 '*book start'라는 글자가 프린트 되어있다. 아이의 첫 책을 받아 온 그 백에 5%(수입 맥주) 또는 6%(막걸리)의 알코올이 담겨 있다.

(매번 계산하면서 '아차, 나 민증 없는데 확인하면 어쩌지?'라고 생각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book start: 영유아 독서 진흥을 위해 공공 도서관 등에서 영유아 연령별로 책 꾸러미를 무상 배부하는 프로그램. 아이가 6개월쯤 됐을 때, 그림책 두 권과 'book start'가 새겨져 있는 에코백을 받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영화를 보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므로 맥주(또는 막걸리)를 잔에 담아 들고 <차트를 달리는 남자> 재방송을 시청한다. 오전 내내 집안을 정비하기 바빴던 나를 위한 일종의 '노동주'인 셈이다.


 "띵동~"


 하아... 하필 <차달남> '부창부수 끼리끼리 막장 커플' 1위 발표를 앞두고 알람이 울린다. 하원 버스가 집 근처에 다다랐다는 알림음이다. 부랴부랴 마스크를 끼고 하원 장소에 나간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로 한껏 미소 지으며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맞이한다. 알코올 냄새가 마스크 밖으로 새어 나가진 않았겠지? KF94 마스크의 성능을 믿겠어. (코로나야, 고마워!)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켜져 있는 TV를 보고 말한다.

 

 "엄마, 또 '*파고파고' 보고 있었어?"

 *파고파고: 예능 <차트를 달리는 남자>의 MC인 이상민과 조우종이 '여러 사건을 파헤친다'는 의미에서 "파고~파고~"를 외치는데, 그 장면을 보고 아이는 프로그램 이름이 <파고파고>인 줄 안다.


 얼른 채널을 돌리고 한바탕 보드게임도 하고 유치원에서 준 과제를 하고 있으면 퇴근 중이라는 편의 문자가 도착한다.


 '좋았어, 오늘은 내 전매특허인 제육볶음을 해 주지!'


 갖은 야채를 꺼내려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내 눈에 띄는 건 늠름한 자태로 대기하고 있는 맥주다. 망설임 없이 캔을 시원스레 '딱!'하고 따서 꼴딱꼴딱 들이켜고 나서'다다다다' 소리만 요란한 칼질을 한다.

 한창 요리를 하고 있을 때 '띠띠띠' 도어 록 버튼이 눌리는 소리가 나면 나는 마시고 있던 캔을 능숙하게 나만의 안전 구역에 숨긴다.


 그곳은 바로, 개인 경비 구역 JSA.

  

 판문점의 공동 경비 구역 'JSA(Joint Security Area)'를 연상했다면 큰 오산.


 나만의 개인 경비 구역 JSA는 'Jubang Seonban An(주방 선반 안)'의 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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