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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별 Oct 24. 2022

19화. 애주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다

삼재(三災)에 내게 생긴 일들

 가까이 살던 전 직장 동료가 죽었다. 아직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 둘을 남기고.

 암은 너무 늦게 발견되었다.

 

 그녀 남편에게서 부고 연락을 받고 그녀의 영정 사진 앞에 섰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니, 엄마의 죽음을 모르고 복도에서 뛰어노는 그녀의 네 살 배기 아들 앞에서 마음껏 울 수가 없었다.

 울음을 참느라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사는 곳이 가까웠고(걸어서 5분), 우리 둘은 나이가 비슷했고(한 살 차이), 우리의 아들은 동갑내기(네 살)였다. 그녀와 나는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았고 말도 잘 통했다. 나는 그녀의 애교 많은 목소리와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와 약간 진 눈꼬리를 좋아했다.


 배우자 상을 당한 남편은 붓고 시커메진 얼굴로 그녀가 2년 전, 젖몸살로 여겼던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암 판정을 받았다고 말해 주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녀는 성실히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조금 나아지다가 많이 나빠지는 상황이 반복됐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남편과 함께한 마지막 1년 동안 암은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그녀와 우리 집에서 얼큰한 순두부찌개를 끓여 먹었던 일, 육아서와 장난감을 사 들고 그녀의 집에 찾아갔던 일, 백화점 식당가에서 스테이크를 썰며 폭풍 수다를 떨었던 일들이 모두 2년 전의 일이었다고? 우리가 그 후로 2년이나 못 만났다고?'


 1년 전쯤 내가 그녀에게 안부를 묻는 카톡을 보냈을 때, '때 놓치지 말고 건강 검진 잘 받으세요'라던 답장이 그녀가 내게 남긴 유언이나 다름없었다니..

 장례식장에서 그녀 특유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귓가에서 무한 재생되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녀를 떠나보낸 것이 원통하고 미안해서 가슴이 타들어 갔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까.

 한밤중에 핏기가 사라진 아들을 둘러업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구토와 설사로 탈수 상태에 이른 아이의 하반신에 바늘구멍만 한 붉은 반점들이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의사는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인 ‘HS 자반증’라고 했다. 반점은 몸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여러 곳으로 퍼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혈뇨와 단백뇨 수치로 미루어 보아 바이러스가 이미 상반신까지 올라와 신장을 공격하고 있으며, 치료시기를 놓치면 후유증으로 투석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신용카드 한 장 달랑 들고 찾은 응급실에서 당장 입원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그녀의 장례가 치러졌던 바로 그 병원에서 며칠이 될지 모르는 입원 생활이 시작됐다. 나는 매일 밤 좁고 딱딱한 보호자용 침대 위에 모로 누워 두려움에 떨었다. 조각 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앉아 병실 문을 쏘아보는 새벽이 이어졌다.

 보름 후, 말끔하게 회복한 아이 옆에서 나는 퇴원 수속을 밟았다. 퇴원이 아니라 입원 수속을 해야 할 것 같은 참담한 몰골을 하고서 번호표를 들고 무기력하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딩동!”


 퇴직금 지급 소송을 맡은 변호사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고작 한 문장이었지만 비틀거리며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내 다리를 걸어 주저앉히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승소한 1심 판결에 피고가 불복하여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친구의 죽음, 아이의 입원, 피고의 항소.


 한 달 만에 믿을 수 없는 사건들로 직격탄을 맞은 나는 '알코올'이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중독자'가 되어갔다.

 

 애초에 '애주가'였으니 '중독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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