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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몽당연필 Oct 24. 2022

18화. 수상한 검정 봉투

수요일 밤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일주일이 왜 이리도 짧은지. 또 수요일이다.

 

 수요일 밤부터 목요일 아침까지 분리배출을 완료해야 한다.

 스팸 한 캔, 동원참치 두어 캔과 함께 검정 봉투에 담긴 것은 파란색, 금색, 초록색 맥주 캔들.

 

 '이게 다 일주일 동안 마신 거라고?'


 심지어 지난주에 내다 버리지 못한 한 더미가 세탁실 구석에 처박혀 있다. 캔류는 분리배출할 때 소음이 많이 발생하므로 밤 10시 이전에 배출을 완료해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사람과 마주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양손에 검은 봉투를 들고 집을 나선다. 분리수거장에서는 당직 경비 아저씨께서 주민들이 잘못 배출한 쓰레기들을 2차로 정리하고 계신다. 내 손에 들려있는 묵직한 봉투를 보신 아저씨께서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봉투를 받아 주시려 한다. 호의는 너무도 감사하지만 여기서 허무하게 내 실체(?)가 탄로 나서는 안 된다.


 "괘..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감사합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용물이 보이지 않게 봉투 끝을 말아 쥐고 캔류 수거함 쪽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와르르르' 끝도 없이 쏟아지는 맥주캔을 보며 오늘도 다짐한다.


 '인간아.. 이제 작작 마시자. 수요일마다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어...'


 헐렁하게 빈 검정 봉투를 들고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라 거울을 본다. 며칠 사이에 얼굴이 더 칙칙하고 푸석해졌다. 엄지와 검지로 아랫 뱃살을 슬그머니 집어 본다. 술배 한 겹에 나잇살 한 겹이 겹쳐 제법 두둑하다. 그때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엘리베이터 구석에서 빨간 불이 일정한 박자로 깜빡이고 있다.


 매주 수요일 밤마다 검은 봉투를 들고 아파트를 드나드는 수상한 여자의 '증거 인멸 현장'을 초 단위로 녹화하고 있는 CCTV 아래에서 나는 괜히 겸연쩍어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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