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시댁을 찾았지만 시어머니 눈엔 몸도 마음도 썩어 들어가는 며느리는 보이지 않으신 모양이다.
“아들, 살이 더 빠진 것 같다.”
‘이 사람 어머님 닮아서 원래 살 안 찌는 체질이잖아요. 회사에서 삼 시 세 끼 잘만 먹고 다녀요.’
어머님은 하얗고 통통한 손자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가신다.
“혼자 놀면 안 심심해? 엄마한테 여동생 낳아 달라 그래.”
‘알코올에 찌들어 사는 마흔 넘은 며느리한테서 건강한 둘째 아이는 기대하지 마세요.’
머리 위로 부풀어 오르는 무수한 말풍선을 어머님 앞에서 터트리지 못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딸깍’ 소리 나게 잠갔다. 그러고 나서 일부러 물을 세게 틀고 오랫동안 손을 씻었다. 병든 마음으로는 도저히 어머님의 악의 없는 말씀이 품어지지 않았다.
아이가 콧물을 흘리면 내복을 안 입힌 내 탓, 얼굴에 상처가 생겨도 손톱을 제때 안 깎인 내 탓으로 돌리는 친정 엄마 말도 고깝게 들리긴 마찬가지였다. 사동사 노이로제에 걸렸는지 ‘입혀라, 먹여라, 씻겨라’ 등의 단어가 귀에 꽂히면 가슴에서 뜨끈한 것이 치솟았다. 그렇다고 악다구니 쓸 주제는 못 되어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대답은 번번이 내 속에서 독이 되어 스몄다. 독기가 눈구멍으로 새어 나오는지 내 눈자위는 늘 벌게져 있었다.
맹독을 희석시키려면 다시 술, 술이 필요했다.
며칠 후, 목덜미가 견딜 수 없이 가려웠다. 긁는다고 해소되기는커녕 열감을 동반하면서 두피, 팔, 허벅지, 피가 통하는 곳이라면 어디로든 걷잡을 수 없이 가려움이 번졌다. 한 시간도 안 되어 흉측한 열꽃이 몸 구석구석에 피어났다. 급성 두드러기였다. 의사는 두드러기의 원인은 수백 가지여서 무엇 때문에 발병했는지 꼬집어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저는 명확히 알겠는데요. 제가요, 수개월째 잠을 못 자고 있고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요. 알코올에 푹 절여진 간이 해독 능력을 상실하고 백기 투항했나 봐요…….’
독한 스테로이드를 3주간 몸 안에 주입하고 나서야 온몸에 번진 화염이 가까스로 진화되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그 무렵,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일이 종종 생겼다. 술을 마시지 않은 맨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현관 비밀번호 다섯 자리가 머릿속에서 증발된 것이었다. 손가락 끝도 모든 것을 망각했는지 몇 번의 오류 끝에 결국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비밀번호를 물어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널뛰는 감정, 온몸에 퍼진 두드러기, *건망증.
건망증의 원인은 스트레스, 노화, 신체와 정서 건강 악화 등 다양하다. 그 밖에도 '일주일에 맥주 세 캔 이상 마시는 사람들은 뇌에 철분이 쌓여 인지력과 기억력이 나빠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