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하던 일상 이곳저곳에 싱크홀이 생기고,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죽은 그녀는 한동안 나를 찾아왔다(키친드링커 19화 참고).
꿈속에서 그녀와 마주치면 나는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르는데, 나를 본 그녀는 매번 빙긋이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가움, 안도, 서글픔이 뒤범벅되어 잠에서 깨면 새벽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였다. 꿈의 생생함을 붙들고 동이 틀 때까지 뜬눈으로 누워있었다.
‘나한테 오기 전에 가족한테는 들르는 거야?’
눈물로 축축해진 베개에서 한기가 올라오면 콜콜 자는 아들을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목덜미에서 나는 시큼한 땀내를 한껏 들이마시며 아이가 뱉는 숨을 확인했다.
달력의 숫자가 바뀌고 매일 새 날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서서히 부패해 갔다.
‘어디쯤?’
어느새 이 말이 남편과 나 사이의 암호가 되었다. 퇴근길 지하철에 있을 남편에게 세 글자를 보내면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그에게서 주종을 묻는 답장이 왔다. 소주, 맥주, 와인 등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주문이 달라졌고, 요구하는 양은 나날이 늘어났다. 침대에 고꾸라져 바로 잠들 수 있는 양이어야 했다. 술이 모자라면 남편 몰래 찬장을 열어 요리용 청주라도 기어이 찾아 마셨다.
나는 명백한 '알코올 중독', '*키친 드링커'였다.
*키친 드링커(kitchen drinker) 혹은 키친 드렁커(kitchen drunker): '주방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 '주방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란 뜻으로 주로 가족들이 없는 시간대에 집에서 지속적으로 혼자 술을 먹는 주부나 술을 과하게 먹는 여성들을 일컫는 말.
낮에 사다 놓은 맥주가 (이미 마셔서) 동이 났는데 오늘은 야근이라 늦는다는 남편의 연락을 받으면 그때부터 시험에 든다.
안절부절못하고 집안을 서성이다가 결국, 밑창 닳은 단화를 구겨 신고 편의점으로 달려가 얼룩진 에코 백에 수입 맥주를 쓸어 담는다. 하루치 노동력을 알뜰히 소진하고 퇴근하는 사람들을 헤치고 갈 용기가 조금 필요하다. 따뜻한 집밥을 먹으러 걸음을 재촉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내 걸음 속도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맥주가 미지근해지는 건 딱 질색이니까.
안주도 없는 식탁에 앉아 알코올로 위장을 흥건하게 적신다.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지 기분이 우상향으로 급발진한다.
‘좋았어, 이거지.’
절정에서 만세를 한 번 외치자마자 기분은 가파른 레일을 따라 빠른 속도로 추락한다.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브레이크 고장 난 롤러코스터에 탑승했다. 저 아래 끊긴 레일을 내려다보니 묘한 쾌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