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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Nov 01. 2022

나의 삶을 변화시킨 것들

운동과 동행하기

우울증은 질병이다. 마음이 강하지 못해서 진짜 힘든 일을 겪어보지 않아서 나태해서 걸리는 것이 아니다. 난 내 마음이 아프다는 걸 엄마가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우울증을 병이라 생각하지 않고, 내가 마음이 너무 약하다고만 생각했다. 누구보다 힘들고 치열한 삶을 사셔야 했던 엄마에게는 우울증도 사치처럼 느껴지셨을 것이다. 나 또한 우울증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으려고 했다. 내가 너무 게을러서 무기력한 거고, 강인하지 못해서 쉽게 상처를 받는 거고, 아직 힘든 일을 겪어보지 못해서 그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몸은 우울에 굴복하여 쓰러져 있으면서도 마음은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바빴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지만,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내가 아니면 나를 보듬어 줄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상처를 헤집으며 상처가 곪아 터질 때까지 방치하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저녁마다 마음이 불안하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매일같이 쉬지 않고 뛰는 심장이었을 테지만 그땐 심장 뛰는 소리가 하나하나 다 느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병원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우울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알지 못했고,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내 몸을 돌 볼 겨를이 없었다. 나는 원래 게으르고 무기력한 사람이고, 화가 많고 기복이 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근심, 걱정이 많고 겁이 많아 불안함도 큰 거라 생각했는데, 치료를 받고 깨달았다. 난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었고, 단지 범죄 뉴스를 봐서 문단속을 몇 번이고 확인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우울증이 내 성격인 줄 알고 여태껏 살았는데 나는 생각보다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의 사람이었다.

치료를 하며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운동이다. 사람들 만나는 걸 꺼려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는 내가 용기를 내서 한 발짝 앞으로 발을 내디딘 것이다. 운동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땀을 흘리며 50분을 견딘 나에게 성취감을 주었고, 몸의 변화로 자신감도 생겼다. 운동을 한 날은 몸의 에너지가 샘솟았으며 다음 날은 여기저기 쑤시는 근육통으로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운동의 효과를 알고 자신감이 생기자 다른 운동도 해보고 싶었다. 필라테스를 시작으로 요가랑 헬스도 해보고 잠깐이지만 폴댄스도 해봤다. 그중에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수영이다. 처음에는 물에 잘 뜨지도 않고 앞으로 나가지도 않는 것 같아서 답답하고 안 하던 발차기를 죽어라 하다 보니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원체 뻣뻣한 몸은 수영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팔을 자연스럽게 돌리지 못해서 로봇처럼 삐그덕 소리가 날 것만 같았고, 눈썰미가 없어서 동작을 이해하는데 오래 걸렸으며 100m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이 턱까지 차 올라서 한 번씩은 꼭 쉬어줘야 했다. 3개월쯤 됐을 때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점점 욕심이 생겼다. 접영까지는 해보고 그만둬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수영을 한 후 샤워를 하면 얼마나 개운하고 시원한지 그 맛을 알아버려서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목욕탕에 가시는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목욕과 수영의 뒷 맛은 비슷하게 개운하다. 그래서 이젠 수영을 못 하면 목욕탕에라도 가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코로나 이후 수영장을 가지 못했을 때 수영하는 꿈을 자주 꿨다. 꿈속에선 마치 인어가 된 것처럼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목욕탕에서는 그때 그 개운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고, 수영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수영장을 다시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리웠던 만큼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수영을 한 날은 종일 피곤했고, 띠동갑 어린 친구처럼 빨리 가고 싶었으나 몸은 마음 같지 않아 나이 듦을 씁쓸하게 인정해야 했다. 수영을 갈 때마다 오늘은 또 얼마나 힘들까 걱정하며 집을 나서지만, 그리고 그 걱정에 발이 묶여 그대로 주저앉은 날도 있지만, 그래도 수영은 오래오래 할 것 같다. 수영만이 줄 수 있는 시원한 개운함에 중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저번 수업에선 자세가 많이 좋아졌다며 칭찬까지 들었다. 수영을 하며 선생님께 칭찬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좋아서 시작한 수영인데 칭찬까지 들으니 더더욱 포기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취미 생활로 하는 수영이지만 이왕이면 멋진 폼으로 오래오래 하고 싶다. 절뚝거리며 걸으시다가도 돌고래처럼 날렵하고 멋진 자세로 수영장을 누비는 나이 든 어머님들처럼 나도 물속에선 더없는 자유를 누리며 헤엄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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