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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Dec 04. 2022

슬픔과 고통에 공감할 수 있을까?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나는 내가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을 공감하는 것은 먹어 본 적 없는 음식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맛과 냄새를 상상하며 얘기하는 것은 맛을 얼추 유추해 낼 수는 있을지언정 나의 입과 코는 그 맛을 알지 못했다.


친구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슬픔을 막연하게 상상할 수는 있었지만, 그 슬픔이 마음 깊이 와닿지는 않았다. 친구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지만, 그것은 친구의 슬픈 얼굴에 대한 자동 반사적인 눈물이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깊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친구에게 미안했다. 나의 엄마가 죽는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그때는 엄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의 슬픔을 나의 슬픔과 동일시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엄마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한때 엄마의 죽음은 나에게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부모들이 자식들의 안위를 걱정하듯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부재를 가장 두려워한다. 큰 아들은 어릴 때 내가 조금만 늦게 들어가도 엄마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며 울면서 나에게 안겼다. 걱정이 많은 나의 성격을 닮은 탓도 있겠지만, 유난히 부부싸움이 잦았던 시기였기에 아들의 불안이 더 컸으리라 생각된다.


난 엄마의 고통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고 그저 엄마가 죽지만 않길 바랐다.

어느 날 엄마가 수면제와 소주를 마시고 쓰러져 있었을 때 나의 불안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아 울며불며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만큼 엄마의 고통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컸던 것 같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어떤 희망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일은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되었지만, 엄마에게 그때의 일을 차마 묻지 못한다. 그때 일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엄마에게 그 시절의 고통을 떠오르게 하기도 하지만 엄마의 진심을 듣는 것이 두렵다.


그 당시에 난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엄마의 고통을 알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나는 누구에게도 필요치 않은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


이십 대 때 죽고 싶도록 힘들었던 적이 있다. 아니 힘들었던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용기와 명분이 부족했다. 마음은 힘들었지만 나만의 방과 편히 누워 쉴 수 있는 침대가 있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우는 것 밖에 없었다. 계속 울다 지쳐서 그대로 죽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울다가 죽을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울면서 그대로 몸이 떠올라 천장으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엄마의 자살시도를 떠올렸던 것 같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보다는 확실히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땅땅하게 얼어붙은 마음의 표면이 사르르 녹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친구가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울어 준다 해도 결국 힘든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신뿐이다.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낼 때 난 친구들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 걱정 없는 듯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저녁만 되면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웠던가. 가야 하지만 가고 싶지 않은 집.

남편 없이 아이들하고만 집에 있을 때 저녁만 되면 불안했던 마음이 어린 시절의 나와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둠이 깔리면 소환되는 기억들. 잊고 지내더라도 몸은 기억한다. 어둠이 주는 공포와 두려움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내가 엄마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었을까? 고통을 함께 짊어질 수는 없었을까? 엄마 대신 내가 맞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지만 무서웠다. 자신이 없었다.

엄마를 온몸으로 막아주지 못했다는 것이 여전히 죄책감으로 남아 있지만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무력함만 재확인할 뿐.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분노하고 울어주었지만, 친구는 그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었고, 고민을 해결해 줄 수도 고통을 나눌 수도 없었다. 두렵고 불안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친구의 고통에 진심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면 마음까지 가 닿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함에 나 스스로도 나의 진심을 의심했으니 끓어오르다가 금방 식어버린 냄비처럼 나의 진심은 수증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을 지도.


나는 의심한다. 나를. 나는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공감할 수 있는 걸까? 그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긴 한 걸까? 들어주는 것 밖에 해 줄 것이 없었던 나를 자책하며 과연 내가 그 친구를 진심으로 걱정했던 건지 의심해 본다.


어린 시절 엄마의 고통을 함께 나눌 방법은 없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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