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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Dec 14. 2022

운동에 임하는 자세

-꾸준함이 습관으로-

이십 대 때는 운동이 너무 싫었다. 운동은 다이어트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고, 살을 빼겠다는 목적을 갖고 하는 운동은 재미도 없고 고통스럽기만 했다. 남자 친구의 권유로 시작했던 헬스는 유산소 운동을 위한 것이었다. 수많은 운동기구를 제쳐두고 러닝머신이나 자전거만 타다가 집에 왔던 기억이 난다. 체지방을 빼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근육운동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러닝머신에 질려버려 찾게 된 것이 남 눈치 보지 않고 집에서 편히 할 수 있는 다이어트 비디오였다. 2000년대 당시 나왔던 유명한 다이어트 비디오는 다 사서 해본 것 같다. 요가부터 태보, 코어운동까지. 그 역시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둘째를 낳고 집에만 틀어박혀 우울한 하루를 보내던 내게 남편(헬스를 권했던 전 남자 친구)이 필라테스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혼자서 처음 해보는 일에 도전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등 떠밀리다시피 집을 나섰다. 양말을 신어야 하는지 벗어야 하는지도 몰라 눈치를 보며 주섬주섬 양말을 벗고 맨 뒷줄에 숨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 몸이 너무 컸다.

결과적으로 필라테스는 나에게 운동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고, 자신감과 성취감을 주었다. 필라테스로 살을 뺏다기보다는 딱 붙는 운동복을 입어야 하는 부담감에 뱃살이나 팔뚝살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건 몸의 선을 다듬을 수 있었고, 다른 운동에도 도전하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후로 수영과 요가, 폴댄스를 경험했다. 지금까지 꾸준히 하는 것은 수영뿐이지만 새로운 운동에 도전했다는 것만으로 나에게 큰 의미가 되었다.


요즘 나는 수영과 홈트를 즐겨한다. 답답한 날에는 걷기 운동을 하러 나서기도 하지만 왠지 운동을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산책하듯 설렁설렁 걷는 탓도 있겠지만 개운한 맛이 없다고 해야 할까? 마흔이 넘어 무릎이 안 좋아져 걷고 난 후 다리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이유이다. 아무래도 걷기는 운동보다는 산책이 좋다.


내가 강박적으로 운동을 한다고 말했지만, 남들이 봤을 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나에게 강박적 운동이란 운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운동에 임하는 자세는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시작을 하자’이다. 수영 같은 경우에 너무 하기 싫은 날에는 뒤에서 쉬엄쉬엄 따라가자는 생각으로 짐을 챙겨 나간다. 홈트는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몸이라도 풀자’라는 마음으로 매트를 펼친다.

너무 힘들고 하기 싫더라도 일단 시작을 하면 성격상 대충대충 하는 것도 중간에 그만두는 것도 잘 안된다. 하지만 운동에 부담감을 내려놓고 어떻게 해서라도 시작하면 끝까지 해 냈을 때 성취감과 만족감은 대단하다. 물론 뒤에서 쉬엄쉬엄 따라가거나 중간에 그만둔 적도 있지만 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마음이 편하다. 하기 싫음에도 노력은 한 것이기에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 끝까지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은 것은 아니므로. 언제나 죄책감은 시작도 하지 않아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을 때의 빈틈을 파고든다.


운동을 할 때 무리하게 계획을 세웠던 적도 있다. 헬스장에서 근육을 키우는 맛을 알게 되자 일주일에 네 번은 가자고 다짐했는데, 그 다짐 이후 일주일에 두 번도 가지 않게 되었다. 부담감이 들면 피하고 싶은 회피 본능이 발동한 탓이다.


홈트를 하며 100일 프로젝트의 운동을 따라 했을 때 일주일에 5일은 했어야 했지만, 5일을 채우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죄책감이 들고 마음이 조급해졌었다. 그러다 ‘어차피 늦어진 거 끝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잡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편했다. 결국 남들보다 늦더라도 100일까지 따라 했고, 그 성취감은 진작에 100일 프로젝트를 끝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때 이후로 홈트가 습관화되었고 일주일에 두세 번 밖에 못하더라도 꾸준히 하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매일 운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꾸준히 하기 때문에 보지 않더라도 매일 하리라 생각하는 것 같다.


무슨 운동을 하세요?라고 사람들이 물었을 때, 수영과 홈트라고 말하면 수영만 운동으로 쳐주는 느낌이다. 나조차도 홈트를 한다며 운동복에 양말까지 갖추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홈트가 과연 운동이 될까? 효과가 있을까?

홈트를 얕잡아 봤었는데 직접 해보니 다른 운동 못지않게 힘들고 땀도 많이 났다. 홈트를 하면서 근육을 키울 수 있을까 싶었지만, 서서히 몸에 탄력이 생겨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헬스장에서처럼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홈트의 문제가 아니라 덤벨 무게에 있다. 내 성격으로 보아 홈트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덤벨 무게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나에게 이롭다.


마흔이 넘어하는 운동은 꼭 다이어트만의 목적은 아니다. 오히려 관절 건강을 지키고 근력을 키우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소화력이 떨어져 소화를 시키기 위해 하는 날도 잦아졌다. 이제는 운동이 꼭 필요한 나이가 됐다. 언제 갈지 모를 유럽여행을 위해서라도 관절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근력을 키워 놓아야 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운동을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글쓰기를 회피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란 책을 읽게 되었다.


“뇌 내에서 태어나는 해마 뉴런의 수는 유산소 운동을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육체적인 운동과 지적인 작업의 일상적인 조합은 작가가 행하는 종류의 창조적인 노동에는 매우 이상적인 영향을 끼치는 셈입니다.”


그는 전업 작가가 되면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삼십 년 넘게(2016년에 발행된 책) 매일 한 시간 정도 달리기나 수영을 생활 습관처럼 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생활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면서 나의 작가로서의 능력이 조금씩 높아지고 창조력은 보다 강고하고 안정적이 되었다는 것을 평소에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그의 글을 읽고 운동을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그는 네다섯 시간의 글을 쓴 후에 달리지만, 그리고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그만한 체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지만 여하튼 운동에 할애하는 시간을 합리화시킬 수 있었다. 그처럼 매일 유산소 운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나에게는 매일 하는 것만큼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전업주부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운동을 하려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리는 날도 빼먹지 않는다. 꾸준히 운동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휴식이므로.


나에게 운동의 기쁨을 알게 해 준 남편은 바빠서 운동할 시간이 없다. 집에서 홈트라도 하길 권했더니 고가의 스쿼트 머신 없이는 시작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칭이라도 꾸준히 하면 나에게 어깨나 허리를 밟아달라고 하지 않아도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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