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그래서 아빠는 이런 일을 해

삶은 직함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의 궤적

by Bloomlink

“아빠는 회사원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그럼 뭐 하는 사람이야?”

아들이 물었다.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은 그 말에,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정확한 직함이나 회사 이름을 말해주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이 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내가 그동안 해온 수많은 일들을 단 하나의 말로 묶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그게... 아빠는 그냥,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야.”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차곡차곡 되짚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아빠의 첫 직장은 종합사회복지관이었어.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을 만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길을 찾는 곳이었지.

그때 아빠의 직업은 ‘사회복지사’였어.

기록보다 얼굴이 먼저 떠오르던 시절이었지.

아침이면 민원창구를 열고, 낮에는 노인정 어르신들과 이야기하고, 저녁이면 퇴근길에 홀로 사는 할머니 집을 들르곤 했지.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동네 사람들의 눈인사 하나가

그날의 피곤을 잊게 해주었어.

그 시간이 아빠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마음의 거리’를

읽을 수 있는 눈을 키워준 거야.


그다음엔 청소년지도사가 되었어.

지역의 청소년수련관 이라는 공간에서

중학생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보냈지.

공부보다 더 큰 걱정을 안고 있는 아이들,

가정 형편이나 부모의 부재로‘평범함’이라는

단어조차 누리기 어려운 친구들과 함께 말이야.


그 시간은 아빠에게 ‘가능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알려주었어.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작은 응원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배웠지.

아이들 눈빛이 바뀌는 순간, 그 반짝임을 아빠는 지금도 잊지 못해.


그 뒤로는 병원으로 갔어.

병원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분들을 만났지.

암환자, 중증 환자, 가족들이 함께 맞이하는 시간은

언제나 무겁고 조심스러웠어.


그 누구도 쉽게 위로할 수 없었기에,

아빠는 ‘듣는 사람’이 되기로 했어.

긴 침묵을 함께 견디고,

한 문장으로라도 삶을 다독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


그곳에서 배운 건

‘해결’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야.

누군가의 곁에 ‘머물러주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한동안은, 아예 한국을 떠났었어.

호주 시드니에 있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스케줄 매니저로 일했지.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언어와 이름들,

아빠는 그 속에서

‘서툶’과 ‘다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표정과 손짓만으로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걸

그곳에서 처음 알게 되었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나라에 있든 ‘사람은 사람’이라는 걸

마음으로 느꼈던 시간들이었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비영리단체에서 ‘나눔기획팀장’이라는 이름으로 일했어.

처음으로 후원자라는 사람들을 만났고,

기부라는 일이 어떻게 시작되고 이어지는지를 배워갔지.


그때부터였을 거야.

‘이야기’가 일을 바꾸고, ‘한 사람의 마음’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본격적으로 실감하게 된 건.


그다음은 펀드레이저로 살았어.

NGO들의 거리 모금, 캠페인...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일을 돕고,

정기후원자를 모으기 위해

‘나만의 방식’으로 일했지.


때론 명함도, 직함도 없었지만

어느 때보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어.



그리고 지금,

아빠는 강연을 통해 사람들 앞에 서기도 하고,

기업의 브랜드 철학과 NGO의 가치가

만나는 캠페인을 기획해서 제안하기도 해.


이 일이 단지 ‘기획자’의 일은 아니야.

한 장의 슬라이드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를

매일 고민하는 사람,

그게 지금 아빠의 모습이지.


회의실에서 발표를 마치고 나오며

잠깐이라도 사람들의 표정에서

‘좋았어요’라는 눈빛을 읽을 수 있을 때,

그게 아빠에겐 가장 큰 보람이야.


물론 모든 일이 다 잘 풀리는 건 아니야.

수없이 고쳐 쓴 슬로건이

채택되지 못하고 묻히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건넨 진심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 날도 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이 일을 좋아해.


왜냐면 이건 단순한 ‘성과’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야.

가장 조용한 이야기를,

가장 따뜻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는 일.

그게 바로 아빠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야.




아빠는 가끔 이런 말을 해.

직함은 그냥 외투 같은 거라고.

입고 벗는 건 쉬워도

그 안에 담기는 무게는 각자 다르다고.


아빠가 걸어온 길은

누군가의 기준에서 보면

너무 들쭉날쭉하고 비효율적일지도 몰라.


하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경험이 하나로 이어져 있어.

사람을 보는 눈,

이야기를 듣는 귀,

마음을 전하는 말의 무게.


그건 결코 한 직장에서,

한 직함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야.




누군가가 아빠에게 묻는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아빠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


“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도록 연결하는 일을 합니다.”


그게 때로는 거리에서의 캠페인이 될 수도 있고,

강연장이 될 수도 있고,

기업 회의실이 될 수도 있지.


어떤 날은

그냥 조용히 메모 하나 적는 하루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 하루가 쌓이고 쌓여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일에 닿을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고 있어.




아빠는 회사원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어쩌면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몰라.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어.


아빠는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이야기를 쓰고, 듣고, 전하고 있어.


그러니까 아들아,

“그래서 아빠는 이런 일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