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좋은 일이라는 말의 무게

"진심이면 충분한걸까?"

by Bloomlink

“아빠는 좋은 일 하는 사람이잖아. 그치?”


네가 그렇게 말했을 때,

아빠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단다.

아니, 정확히는… 대답을 망설였어.


너의 눈에는 아빠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어려운 이야기를 전하고,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일처럼 보였겠지.

‘좋은 일’이라는 말은 따뜻하고 예쁜 말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그 말을 곧장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어.


아빠는 잠시 눈을 감았단다.

기획서를 수정하던 노트북을 덮고,

너의 그 짧은 한마디를 곱씹었어.


“좋은 일”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아빠에게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단어가 되었기 때문이야.



몇 년 전, 한 사회공헌 캠페인의 발표 현장에서

후원자 한 분이 손을 들고 말했어.


“이 캠페인, 감동 주려고 만든 거잖아요?”


그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남았는지 모르겠어.

그분의 말투는 공격적이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뭔가 묘한 거리감이 있었거든.


우리가 몇 달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였고,

많은 이야기를 듣고 수십 번 수정하며 만든 거였지.

실제 후원으로 이어졌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구체적인 변화가 전해지기도 했어.


그런데도 그 말 한마디는

아빠를 한동안 붙잡아뒀단다.


“좋은 일인데, 왜 그렇게 느꼈을까?”

“진심으로 했는데, 왜 가식처럼 보였을까?”



사실 그런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어느 후원자는

“너무 감동적이긴 한데, 좀 피곤해요”라고 말했고,

어느 기업 담당자는

“진짜 감동적이면 좋은데, 요즘 사람들 감동에 지쳤어요”라고 했지.


이 일을 시작했을 땐,

“좋은 일”이라는 말이 참 고마웠어.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들을 수 있는 직업이라니.

그건 참 뿌듯한 일이었거든.


그런데 점점,

그 말이 기대와 강요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



“좋은 일 하시네요.”

“이런 일은 무조건 응원해야죠.”

“감동입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고맙기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뿌듯해지기도 했어.


왜냐하면, 그 말 속엔

무언의 기대가 숨어 있었거든.


“좋은 일이라면 감동을 줘야지.”

“좋은 일이라면 실수하면 안 되지.”

“좋은 일이라면 당연히 착해야 하지.”


그 기대는 때로,

기획자의 숨통을 조이는 말이 되기도 했단다.



기획자로서 일하며 아빠는 수많은 딜레마를 겪었어.


기업은 브랜드 가치와 마케팅을 고민하고,

NGO는 사연의 진정성과 사회 구조를 이야기해.


한쪽은 빠른 성과를 원하고,

다른 한쪽은 깊고 오래 가는 변화를 바라지.


그 사이에서 아빠는

두 언어를 번역하듯 살아왔어.


어떨 땐 기업의 관점으로 NGO를 설득했고,

또 어떨 땐 NGO의 신념을 지키며 기업을 조율했지.


그 과정이 늘 ‘감동적’이지만은 않았어.

서로의 필요는 다르고,

그 ‘필요’의 무게를 감당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 사이에 있는 기획자였거든.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


한 캠페인 현장에서 만난 50대 여성 후원자였는데,

말없이 구석에 서 있다가 나중에 이렇게 말하셨어.


“저는 솔직히 감동엔 별로 약하지 않아요.

제가 뭘 돕고 있는지,

내가 한 선택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만 알려주면 돼요.”


그 말이 아빠에게는 깊게 와서 닿았어.


감동보다 ‘구조’

눈물보다 ‘투명성’

스토리보다 ‘신뢰’


이 세 가지가

때로는 ‘좋은 일’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거야.



그 후부터 아빠는

캠페인을 기획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어.


“이건 감동을 주기 위한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이 캠페인은 아름다운가,

아니면 투명하고 지속 가능한가?”


그 질문을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기준이 바뀌기 시작했어.



이쯤 되면 궁금할 거야.


“그래서 아빠는 지금 어떤 기준으로 일해?”


음, 말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빠는 지금 하나의 틀을 만들어가고 있어.


그건 아직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지만

기업과 NGO가 함께할 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진심을 확인할 수 있을지’,

‘누구의 관점이 누락되지 않도록 설계할 수 있을지’를 좀 더 쉽게 풀어낼 수 있는 구조야.


후원자의 질문도,

기업의 요청도,

그리고 활동가의 신념도

모두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아빠는 그걸 하나하나 짜맞추고 있는 거지.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

때로는 ‘감동이 약하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어떤 날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지.


하지만 그런 평가도 아빠는 귀하게 여겨.


왜냐하면 그 안에는

사람들이 ‘좋은 일’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담겨 있으니까.


그 기대가 때론 과하고,

때론 왜곡되기도 하지만,

그걸 무시하지 않고 마주할 때

비로소 더 나은 캠페인이 나오는 것 같아.



이 일이 어떤 때는 지치기도 해.


마음을 다해도 비난을 받기도 하고,

예산과 일정 사이에서

가치와 메시지를 잃어버릴 때도 있거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빠는 네가 했던 말을 떠올려.


“아빠는 좋은 일 하는 사람이잖아.”


그 말이 지금은

무겁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빠를 다시 일으키는 말이기도 해.


왜냐하면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진짜 좋은 일은,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변화를 남기는 거라는 걸.



그러니까 아들아,

진심은 아주 중요한 출발점이야.

하지만 그 진심이 닿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설득과 구조가 필요해.


그리고 그건 감동이라는 한 장면보다

지속성과 신뢰라는 긴 호흡으로 만들어지는 거야.



“좋은 일이라는 말의 무게는,

한순간의 감동이 아니라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신뢰에서 비롯된단다.”